나운규의 <아리랑>
- 최초 등록일
- 2010.04.18
- 최종 저작일
-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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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영화의 탄생과 나운규의 <아리랑> 해석
목차
1. 1919년~1934년 : 한국 영화의 탄생
2. 나운규
3. 나운규의 <아리랑>
본문내용
1. 1919년~1934년 : 한국 영화의 탄생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제작된 영화는 1919년 김도산의 <의리적 구토>로 기록되어 있다. <의리적 구토>는 연쇄극으로 ‘키노 드라마’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1910년대 당시의 신파극과 관계가 있다. 무대상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장면을 촬영하여 극과 극 사이에 상연한 것이다. 연쇄극은 당시 관객들에게는 매우 신기한 볼거리로 연쇄극 상연과 관련된 신문기사나 증언이 남아있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부분적으로 한국인에 의해 영화가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최초의 한국영화로 기록되고 있다.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상연된 이 작품을 한국영화의 출발로 여겨 10월 27일을 영화의 날로 선표하고 기념하고 있다.
한편 윤백남 감독의 <월하의 맹서>를 한국영화의 시발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일본에 의해 촬영, 편집되었으므로 <의리적 구토>가 순수하게 우리나라가 제작하여 시발로 보자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다.
1924년 김영환 감독의 <장화홍련전>이, 안종화와 이월하가 출연한 <해의 비곡>이 제작되었다. 1925년에는 <월하의 맹서>를 감독한 윤백남이 <운영전>을 감독했고, <심청전>을 제작하기도 했다. 1926년에는 이명우 감독은 연재만화를 영화화하기도 했고, 이경손 감독은 <장한몽>을 감독했다. 1925년까지만 해도 독자적인 한국영화는 많지 않았다. 일본인이 제작, 감독, 촬영, 편집 등 각 부문 마다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26년 10월 한국영화의 전설이자 무성영화의 걸작인 나운규의 <아리랑>이 발표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