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 논쟁과 한송절충론의 의의
- 최초 등록일
- 2009.12.16
- 최종 저작일
- 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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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조시대때의 논쟁입니다.
목차
Ⅰ.머리말
Ⅱ. 漢․ 宋논쟁과 한송절충론
Ⅲ. 한송절충론의 의미
Ⅳ. 맺음말
본문내용
1769년(영조 45년) 낙론의 산림학자 김원행의 제자였던 홍대용은 청나라 여행을 하고 돌아와 북학론을 제기함으로써 학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정조대에 이르러 중화문화의 정통계승자로서의 사명감에 송․명의 역사를 정리하여 각종 서적의 편찬이 국가적 사업으로 이루어졌다. 이같은 중국사와 대외명분론의 정리 작업 위에, 조선의 학계와 사상계에서는 북학론이 고창되고 청조학술과 문물의 수용이 본격화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 속에서 지도이념으로서 주자학의 현실적 한계가 분명해진 상황에서, 주자학의 정학(正學)으로서의 위상은 더 이상 보장되기 어려웠다.
북학의 유행에 따른 청조고증학의 연구에 대한 관심에서, 조선지식인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났다. 우선은 청조고증학의 다양한 경전해석을 받아들여 조선 전통주자학의 주자주의적 편향을 반성하는 경향이다. 이는 의리지학에 있어 경전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을 유발하고, 주자주의적 경전해석의 약점을 부각시켜 교조적 경학연구를 불식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이와 함께 전통적인 의리지학(=송학)과 청조고증학(=한학) 사이의 학문적 우위논쟁인 이른바 ‘한․송 논쟁’이 전개되었다. ‘한․송 논쟁’은 그 자체로 전통주자학이 이미 절대적 위상을 잃고 상대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이 논쟁은 변화된 사회상 속에서 정학으로서 주자학의 사회적 영향력이 현저히 약화되던 경향을 더욱 심화시키게 된다.
참고 자료
․ 유봉학 『정조 대왕의 꿈』 ; 개혁과 갈등의 시대 - 신구문화사 2001
․ 논문 - 金文植, 朝鮮後期 京畿學人의 漢宋折衷論, 성균관대학교대동문화연구원,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