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환란 이후 우리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
- 최초 등록일
- 2009.08.27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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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환란 이후 우리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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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까지 24개의 투자금융회사가 종합금융회사로 전환되었고 이후 30개로 늘어나서 해외업무를 시작하였다. 이들은 외채를 끌어와서 어음교환을 시작하게 되었다. 기업이 부도를 일으키게 되자 외채를 끌어서 어음을 할인한 이들 종금사(종합금융회사)들이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었고 특히 한보와 기아의 12조 원 가량의 대형 부도사태는 위기를 결정적으로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들은 관치 금융의 그늘아래에서 부실한 경영을 하였으며 이들에게 연관된 작은 관련기업들도 연달아 도산의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당시 기업들의 과도한 해외 단기 차입금과 당시 정부의 잘못된 관치 중심의 경제 정책과 불합리한 정치적 판단으로 인해 부실기업 이였던 한보와 기아자동차에 대한 처리가 제대로 이루어 지지 못했으며 국제적으로 급박하게 움직이는 외환 관리에 실패하였다.
또한 1997년 말 주변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제가 어려워지자 외국 투자기관들은 한국의 경제도 곧 어려워질 거라 판단하여 투자자금을 대규모로 회수 해갔다. 또한 정부는 1997년 9월 이후 계속된 외환시장 불안정 속에서 원화 가치를 지키기 위한 인위적인 환율 방어를 시작하였고 이에 들어가는 비용이 증가함에 따라서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한편 만기가 돌아오는 해외차입금의 규모는 점차 증가하기 시작하여 외환지급불능사대가 초래하기 직전 까지 몰리는 외환위기가 전면적으로 가시화되었다.
1997년 11월 21일 대외채무를 갚지 못해 발생할 국가부도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서 국제통화기금의 강력한 경제개혁 요구들을 받아들이는 조건하에서 IMF 구제 금융을 수용하며 금융 위기를 해결하기 시작하여 2001년 8월 195억 달러의 IMF 구제 금융 전액을 상황하며 외환 위기를 순조롭게 넘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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