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의 생애, 그리고 역사속에서의 의미
- 최초 등록일
- 2009.06.14
- 최종 저작일
- 2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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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마리 앙투아네트가 비운의 왕비라는 사실은 모두들 알고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비운의 왕비인것은 단순히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그녀의 일생과 역사속에서의 의미, 왕비이기엔 너무나 평범했던 그녀의 성격 등을
조사해 보았다.
목차
1. 주제 선정의 배경
2. 마리 앙투아네트의 생애
3. 오해와 진실
4. 대사로서의 역할을 안고 있던 마리 앙투아네트
4. 마리 앙투아네트에 관한 나의 의견
본문내용
1. 오스트리아의 황녀
(여기서 마담 앙트완느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뜻한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성품을 파악하고 그녀의 평생에 마리아 테레지아가 미친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녀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으며, 나는 이 부분에 많은 비중을 두기로 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의 (살아남은)여덟번째 황녀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프란츠 슈테판 황제였고 어머니는 오스트리아의 여황인 마리아 테레지아였는데 마리 앙트와네트는 그녀가 가장 존경받는 시기의 정점에 태어난 자식이었다. 마리 앙트와네트의 본명은 마리아 안토니아 요제파 요안나였으며, 가족 뿐만 아니라 빈의 궁정 내에서는 마담 앙트완느라고 불렸다.
마담 앙트완느는 주목받지 못하는 황녀였다. 가족 내에서 그녀의 지위는 나이 차와 서로의 친밀함에 의해서 결정되었는데, 나이가 18달 더 많은 오빠와 13달 더 어린 남동생의 사이에서 그녀가 어머니의 관심을 아기 일때 크게 받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마리아 테레지아는 똑똑하고 예술적으로 재능이 있는 그녀의 언니인 마리 크리스틴과 라 마리를 절대적으로 편애했으며, 마담 앙트완느는 그저 유순함과 순종을 갖춰야하는 황녀들 중 한명에 불과했다. 훗날에 그녀가 프랑스의 황태자비가 된 뒤,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썼던 내용 중 “마리 크리스틴이 어머니를 그토록 자주 볼수 있는 행복을 누리는 것을 제가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아세요!” 라는 말은 이러한 상황을 살펴볼 때, 그녀가 어머니에 대해서 서운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게끔 해준다. 이러한 가족 내의 상황에서 마담 앙트완느는 나이에 있어서 가장 가까운 샤를롯과 서로 친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그 둘은 몇 년간 공적인 관심으로부터 벗어나있을 뿐만이 아니라 같은 경험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더욱 가까워 질 수있었던 것 같다. 안토니아 프레이져의 책에 의하면, 샤를롯이 보호자로 지배를 하는 쪽이었다면 마담 앙트완느는 의존하는 쪽이었다고 한다.
참고 자료
‘안토니아 프레이져의 마리 앙투아네트’와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