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베르사유궁과 궁정의례를 통해서 본 루이 14세 시대의 절대왕정 이라는 학사졸업논문입니다. 정성 들인 논문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베르사유에 드러난 절대왕정의 모습
1. 베르사유의 탄생
2. ‘계획된 공간’ 베르사유와 절대왕정의 관계
Ⅲ. 궁정사회의 내면 : 절대왕정은 있는가?
1. 일상화된 궁정의례
2. 차별의 기제, 궁정의례
3. 궁정의례의 숨겨진 의미
Ⅳ.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쯤, 16-18세기 유럽 전역은 절대왕정 아래 놓여있었다. 신과 교회, 교황을 중심으로 모든 세계가 움직였던 중세는 이제 막을 내리고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그 과도기에서 바로 절대왕정이 등장한 것이다.
절대왕정 시기는 중세의 봉건적 정치체제에서 벗어나 강력한 왕권을 갖는 ‘절대’군주가 국가를 다스리는 시기로 사법, 행정, 군사적 측면에서까지 모든 권력이 왕에게 집중되었다. 신 이외에는 그 누구도 국왕에 대적할 사람이 없으며 모든 이들은 신이 왕에게 부여한 정치적 지도력에 복종해야 했다. 이렇게 매우 강력한 왕권으로 나라를 통치하고 큰 업적을 남길 수 있던 절대왕정시기에 서유럽의 에스파냐,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등의 다양한 유럽국가의 국왕은 절대 권력으로 왕권을 강화해나갔다. 많은 유럽의 나라들 중 프랑스가 대표적인 절대왕정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절정으로 손꼽히는 시기는 바로 ‘루이 14세’의 집권기이다.
그가 실제로 이런 말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고 하나 우리에게 익숙한 “짐이 곧 국가다.”는 루이 14세를 대표할 수 있는 문구라고 생각된다. 짐이 곧 국가인 것처럼 왕의 치세가 태양과 같이 높다고 해서 ‘태양왕’으로도 불리는 루이 14세는 17세기 프랑스의 절대왕정체제의 정점에 있던 인물이다.
<중 략>
이런 관점에서 본 논문이 다루고자 하는 바는 ‘베르사유의 겉과 속’의 측면에서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겠다. 첫째, 우리가 기존에 생각하고 있던 베르사유의 겉모습을 통해 본 루이 14세의 왕권 강화의 측면이다. 베르사유에서 특히 왕권 강화의 상징으로 이야기되는 장소나 건축물 등을 통해 루이 14세를 돌아 볼 것이다. 둘째,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궁정의례’라고 하는 베르사유의 내면 깊숙한 곳을 들여다봄으로써 과연 어느 누구도 흔들 수 없는 견고하고 강력한 왕권을 가진 ‘절대’군주와 ‘절대’왕정이 있었는가에 대해 고찰해볼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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