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인구의 급감과 경제적 파급효과
2.1. 인구의 급감
2.1.1. 인구감소율 추정 근거자료의 신빙성
2.1.2. 인구감소율 추정을 둘러싼 쟁점들
2.2. 경제적 파급효과
2.2.1. 노동자의 지위 상승
2.2.2. 경제적 변화가 촉발한 계급 갈등
3. 사회적 파급효과
3.1. 종교적 권위의 붕괴
3.1.1. 죽음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당대 문화적 사조
3.1.2. 교회의 권위 하락과 신앙생활의 개인화
3.2. 그 외의 사회적 파급효과
3.2.1. 반유대주의의 심화
3.2.2. 기술의 혁신과 발전적 사회 변화
4.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서론
의학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에도 역병의 발생과 창궐은 공포의 대상이다. 가까운 예로 2002년의 사스, 2009년의 신종인플루엔자를 꼽을 수 있겠다. 당시 각국의 정부는 공항과 항구 등 공공장소에 대해 검역을 강화하였고, 사람들은 인구밀집지역에 방문하기를 꺼렸다. 손 소독제와 마스크의 높은 판매량은 대중의 두려움을 방증했다. 사스와 신종인플루엔자로 인해 각각 774명, 800명 이상이 사망하였다. 스페인 독감과 같은 과거의 질병들이 수천만 명의 사망자를 낸 것에 비하면 적은 수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행성 질병들은 많은 이들을 공황 상태에 몰아넣었다. 이는 미증유의 전염병이 여러 부문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14세기 유럽전역을 휩쓸었던 흑사병(the Black Death)은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질병 중 하나였다. 설치류의 벼룩을 통해 감염된다고 알려진 이 전염병은 유럽 인구의 약 1/3의 생명을 앗아간 것으로 추산된다. 역사학자 윌리엄 맥닐은 몽골 제국 지배 하에서 당시의 대상, 병사, 파발꾼들이 북쪽의 초원지대를 가로지르는 새로운 교역로를 개척하였고, 자연스럽게 마멋이나 쥐와 같은 스텝지대의 야생 설치류가 새로운 질병 보균생물들과 접촉하여 페스트균에 감염되었다고 기술한다. 그의 주장을 고려한다면 유라시아의 스텝지대에서 출발하여 이탈리아에 이르는 감염경로를 추정할 수 있다. 흑사병은 1347년 시칠리아 섬의 메시나 항을 통해 유럽에 상륙하였다. 삽시간에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졌고 프랑스와 영국으로 전파되었다. 1350년에는 북유럽을 거쳐 아이슬란드와 러시아까지 이르렀다.
약 4년 정도의 기간 동안 가공할 속도로 확산되었고 그 결과 엄청난 인구가 사망하였으니 대단한 재난이었다. 사망자 수와 규모만으로도 당대 사회적 혼란과 충격을 예상할 수 있다. 빠르게 퍼지는 죽음 앞에 사제와 교회는 무력했고 사람들은 종교적 신념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중세를 대표하는 절대적 신성과 그를 기반으로 한 질서가 무너지고 있었다.
참고 자료
Joseph R. Strayer, 『중세시대의 서유럽』, 김동순 옮김,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1994.
필립 지글러, 한은경 옮김, 『흑사병』, 한길사, 2003.
수잔 스콧, 크리스토퍼 던컨, 『흑사병의 귀환』, 황정연 옮김, 황소자리, 2005.
윌리엄 맥닐, 『전염병의 세계사』, 김우영 옮김, 이산, 2005.
존 켈리, 『흑사병시대의 재구성』, 이종인 옮김, 소소, 2006.
장지연, 『포켓속의 세계사』, 미네르바, 2009.
박흥식, 흑사병과 중세 말기 유럽의 인구문제, 서양사론, 제 93호, 2007.
박흥식, 흑사병 논고, 역사교육, 제 106집, 2008.
김병용, 중세 말엽 유럽의 흑사병과 사회적 변화, 대구사학, 제 88집,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