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한문학의 이해] 송시풍(宋詩風) 한시(漢詩)와 당시풍(唐詩風) 한시(漢詩)의 특징비교분석
- 최초 등록일
- 2015.12.20
- 최종 저작일
- 20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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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한시사의 전개
Ⅲ. 송시(宋詩)와 당시(唐詩)의 특징
Ⅲ-1. 송시풍(宋詩風)의 한시(漢詩)
Ⅲ-2. 당시풍(唐詩風)의 한시(漢詩)
Ⅳ. 결론
Ⅴ.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송시(宋詩)와 당시(唐詩)는 중국시의 역사에서 쌍벽을 이루는 두 시대의 시다. 그러나 송시(宋詩)니 당시(唐詩)니 하는 개념은 왕조, 시대의 개념을 떠나 시의 성향을 말하는 풍격 용어로 사용된다. 당대의 걸출한 시인 두보와 백거이· 한유 등의 시는 송풍(宋風)을 열었다는 점에서 송풍(宋風)이라고 할 수 있고, 당풍(唐風)을 추구한 송대의 작품은 당풍(唐風)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한국 한시의 당풍(唐風)과 송풍(宋風)의 문제 역시 단순한 중국 시의 모방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시의 창작, 시의 성향과 관련한 두 가지의 근원적 방법론에 결부된다. 조선 후기의 학자 신경준(申景濬)은 「시칙(詩則)」이란 글에서 역대로 많은 시가 있어왔지만, 시의 작법은 영묘(影描)와 포진(鋪陳), 두 가지를 벗어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인은 광경을 즐겨 서술하였다. 그래서 그 시에는 영묘가 많다. 송인은 의론 세움을 즐겨하였다. 그래서 그 시에는 포진이 많다. 무릇 광경을 서술함은 국풍의 나머지에서 나온 것이니 자못 참되고 두터운 맛이 적다. 의론을 세움은 양아의 나머지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의 자취가 완전히 드러나 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당인은 시를 가지고 시를 지었고, 송인은 문을 가지고 시를 지었다고 생각하여 당시가 송시보다 훨씬 뛰어나 송시는 당시에 미치지 못한다고 보았다. 이는 당시에는 영묘가 많고, 송시에는 포진이 많은 까닭이다. 그러나 송시가 당시만 못한 것은 바로 기격이 모두 밑도는 까닭이지 포진이 영묘만 못하여서 그런 것은 아니다.
위 글은 당시(唐詩)의 특징으로 ‘영묘(影描)’를, 송시(宋詩)의 특징으로 ‘포진(鋪陳)’을 들고 있다. ‘영묘(影描)’란 그림자를 묘사하는 것이란 뜻이다. 그림자는 말 그대로 그림자일 뿐 실체가 없다. 대상과 마주하여 일어나는 시인의 감정은 마치 그림자와 같아서, 정확히 단정 지어 말하기 어렵다. 시는 이처럼 꼭 꼬집어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을 언어로 옮겨내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반면 ‘포진(鋪陳)’은 사실을 사실 그대로 진술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참고 자료
정민(1996) 『한시 미학 산책』솔출판사
한국한문학회(2003)『한국한문학과 미학』태학사
전송열(2001) 「조선조 초기학당의 변모 양상 연구」연세대학교 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