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와유물유적 ) 조사 대상 향교, 서원에 대한 간략한 소개, 방문 일정 및 과정 제시,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할 것.
- 최초 등록일
- 2023.01.25
- 최종 저작일
- 20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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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조사 대상 향교, 서원에 대한 간략한 소개
2. 방문 일정 및 과정
3. 조사한 내용
4. 감상 소감 및 상황 가정하기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서론
향교와 서원의 경우 유교 건축으로 우리문화로 가장 많이 전승 및 보존되고 있다. 향교의 경우 지방의 유학교육을 위해서 설치한 관학 교육기관으로 각 군현마다 설치되어서 교육과 제사를 지내는 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지방 향교에서는 인재 배출을 하는 곳으로 국가정책에 따라 설치되었다. 그러나 운영부실과 교생수준의 하락 등으로 역할이 쇠퇴하고 서원 발달로 제향 위주로 운영하게 됐다. 일제강점기에 향교의 교육적 기능이 박탈되면서 선현에 봉사하는 역할만 수행 가능하게 되고, 유림이 영향력이 축소되고 식민통치에 순응하는 집단으로 결성되게 됐다. 이러한 향교에 대해 조사하고 그에 대한 감상문을 작성하고자 한다.
2. 본론
1) 조사 대상 향교, 서원에 대한 간략한 소개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호로 지정되어 있는 수원향교는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및 배양하면서 제사를 지내거나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온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 1291년 수원읍 중심이던 화산 앞에 건립되었고, 500년 후 1789년 정조 부왕 사도세자의 원침을 양주 배봉산인 현재 위치인 화산 인근에서 향교를 현재 위치인 교동 43번지로 이전 건축했다. 이전 당시 목재 대부분이 재활용되었으나 건물 하부가 침수로 인해서 부후되면서 1795년 개축하고 이후 몇 차례 소규모 보수작업을 진행하였다.
향교는 건립 이후 수난도 이어졌는데 1892년 3월 30일에 대성전 및 동무 서무에서 비가 많이 새면서 개수하라는 전교가 있었으며, 대성전이 해방 이후로 중수되었지만 전쟁 중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폭격으로 대성전과 동재 서재 일부는 소실되었다.
동무와 서무의 경우 건축 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하지만 목부재의 부후나 뒤틀림으로 동무와 서무에 대해 전면 해체 및 보수작업이 수행되기도 했다. 수리보수 과정에서 재사용되지 않은 목부재나 전통형태 철정은 여러 점 수습되었다. 수원화성으로 유명한 수원향교가 현대도시 사회의 향교 전통의 위상을 조명하게 된다.
참고 자료
http://www.skk-suwon.com/skin/sub_page.php?page_idx=46
나맹진. "향교 유림의 재전통화와 실질적 전통성." 국내석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대학원, 2022. 서울 http://www.riss.kr/link?id=T16549096
나혜주. "수원 팔달문과 수원향교에 사용된 철정의 재료와 제작기술 비교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용인대학교 일반대학원, 2020. 경기도 http://www.riss.kr/link?id=T156506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