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산대놀이 감상문
- 최초 등록일
- 2009.01.19
- 최종 저작일
- 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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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탈춤의 이해 수업에서 배우는 송파산대놀이의 이론적 배경과 감상문을 작성한것입니다
목차
[이론적 배경]
1. 송파산대놀이의 유래
2. 연희 시기
3. 마당 구성
[감 상]
본문내용
[이론적 배경]
1. 송파산대놀이의 유래
1973년 중요 무형 문화재 제 49호로 지정된 송파 산대놀이는 약 200년 전부터 서울 송파구 석촌 호수 주변에 있던 송파장을 중심으로 연희되고 있는, 현재 서울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탈놀이이다.
과거에 태조 이성계가 도읍을 송도에서 한양으로 옮기고 나서 사방에 장승(장생)을 세웠으며, 동으로 퇴계원과 송파, 남으로 노량진, 북으로 구파발의 탈놀음패를 불러다가 사방에서 놀이판을 벌였다. 모두가 잡귀를 물리치고 새 서울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뜻이었다. 그 후에 4대문을 쌓았다. 라고 전해 내려온다.
정형화된 산대놀이가 성립되기 이전부터 송파에 잡스런 탈놀이(종교가면이나 풍물패의 잡색놀이)가 존재했을 가능성도 전적으로 부인할 수 없다. 어느 면에서는 한양이 도시화되기 훨씬 이전부터 송파진에 사람들이 모여 살았을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본다. 수도를 위한 시장기능을 갖기 이전의 송파 마을은 작은 강촌이자 농촌으로서 마치 하회 마을과 같은 종교와 영농의식에 잠겨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 생활에 상응하는 놀이 의식을 지녔을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다.
이렇게 구전되는 이야기를 통해 볼 때 조선시대 이전부터 송파 등지에서 탈놀음이 전승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나, 이는 현존하는 산대도감 계통과는 다른 순수한 민중놀이로서의 산대놀이였을 것으로 본다.
2. 연희 시기
연희 시기는 정월 대보름, 사월 초파일, 단오, 백중, 한가위 등의 명절에 세시놀이로서 행해졌는데, 특히 단오명절에는 보양을 띄어 각 지방의 산대놀이 명 연희자를 초청하여 1주일씩 탈놀음을 하기도 하였다.
또한 송파가 상역지 였기 때문에 장이 덜되어서도 마을의 종합적 놀이마당으로, 탈놀음뿐만 아니라 광대 줄타기, 씨름 등이 함께 벌어졌다. 상인들이 추렴하여 줄 걸고 (줄타기) 씨름 붙이고, 산대놀이를 벌이면서 장이 서게 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