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새로운 식민지 지배방식과 재조일본인 및 자치세력의 대응(1919~22) , 기만책인 문화통치
- 최초 등록일
- 2008.11.05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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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20년대 기만책인 문화통치에 관한 내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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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계를 명확하게 하였다. 앞의 이들과 달리 독립을 전망하면서 자치를 주장한 이들도 있었는데, 국민협회 내에서도 일시적 방편으로서 자치를 요구하는 자가 있었다는 동아일보의 기사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동아일보는 영국의 자치령인 아일랜드의 경우를 보면서 그들의 독립을 전망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서열화된 가치질서로서 동화주의 이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동화를 부정하고 민족문화를 유지한 영국형 자치를 수용하기를 주장한 것은 당시로서 불가능 했던 것이었다.
*기만술책으로서의 문화통치
일제는 세계적 민주주의의 대세와 3.1운동, 그리고 일본 국내의 정치적 변화로 인해 내지연장주의를 표방하면서 조선에 대해 문화통치를 시행하였다. 그러나 이는 병합초기부터 시행해온 동화정책을 강화시킨 것이었다. 일선동조론에 근거하여 내선일체를 내세워 민족말살을 통한 정체성 파괴와 인적, 물적 동원을 목적으로 한 기만술책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는 동화를 통해 ‘자치’등으로 피식민지인의 현실을 극복하고자 한 조선인의 의식을 균열시키고, 일본인의 의식을 고착화하여 모순을 더욱 심화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즉, 동화를 표방하면서 신민이 되길 요구하면서, 신민으로서의 권리, 즉 참정권을 막음으로써 신민으로로의 진입을 불가하는 동화정책의 이중성은, 민족적 차별인식과 주종관계를 심화시켜 서로에 대한 배타성을 증폭시키는 모순을 갖고 있었다. 또한, 문화정치라는 이름과 달리 1918년
참고 자료
김수영, ‘동화(同化) 이데올로기’-그 이상과 현실의 변주, 한민족문화학회, 한민족문화연구 NO.22, 2007.
조선 총독부 통계 연보, 1925.
신주백, 일제의 새로운 식민지 지배방식과 재조일본인 및 ‘자치’세력의 대응(191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