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당] 붕당, 당쟁, 사화, 좌주문생제 에 관하여(A+)
- 최초 등록일
- 2007.12.06
- 최종 저작일
- 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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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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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붕당(朋黨)
2. 당쟁(黨爭)
3. 사화(士禍)
4. 좌주문생제(座主門生制)
- 참 고 문 헌 -
본문내용
1. 붕당(朋黨)
한국에서는 조선 중기에 성립되어 서로 대립하고 공존하면서 정치를 이끌어 갔다. 지방에서 성장한 사림파(士林派)는 15세기 말 이후 중앙에 진출하기 시작하여 훈구파(勳舊派)로부터의 심한 탄압을 이겨내고, 16세기 중엽 선조 즉위 뒤 중앙 정계를 장악하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서인과 동인으로 분파되었다. 근본적 원인은 당시 완전히 청산되지 않은 훈구 정치를 어떤 속도와 방법으로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후배 세대와 선배 세대의 입장 차이에 있었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중앙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과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관직을 둘러싼 경쟁이 집단화되어 나타난 현상이었다(조선실학자들의 견해). 중국과 조선의 군주체제에서는 신료가 붕당을 결집하는 것은 범죄로 인식되었으며,《경국대전》에는 거기에 대한 처벌 규정이 들어 있다. 그러나 중국 송대(宋代)의 신유학에서는 구양수(歐陽修)와 주희(朱熹) 등에 의해 군자끼리 모인 ‘군자당’이 소인의 집단을 누르고 정치를 주도하여야 한다는 논리가 제시되고, 조선의 사림파도 그것을 받아들였다. 특히, 학문과 정치가 결합된 상황에서 붕당은 학통의 차이와 정치적 입지에 따라 많은 분기를 보이면서 정치 세력 결집과 권력 행사에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서인은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이 중심이 되었으며, 동인은 주로 이황(李滉) ·조식(曺植) ·서경덕(徐敬德)의 제자로 구성되었다. 이 중 구성이 복잡한 동인은 이황의 제자를 중심으로 한 남인과 그 밖의 인물을 중심으로 한 북인으로 분기되며, 북인은 다시 대북 ·소북 등 여러 분파를 낳았다.
참고 자료
- 최용범 /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개정판) / 페이퍼로드 / 2007
- 남경태 / 종횡무진 동양사 / 그린비 / 1999
- 백유선 / 한 번만 읽으면 확잡히는 국사 / 한언 /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