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건축-도무스
- 최초 등록일
- 2007.11.03
- 최종 저작일
- 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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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양건축의 연구 배경과 로마의 도시공간 을 주제로 작성하였습니다. 목록을 보시면 많은 도움이 되실 겁니다.
목차
1. 서론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2) 연구의 범위 및 방법
2. 로마제국의 도시계획
1) 로마의 도시계획
2) 로마
3) 로마의 지방도시
4) 로마의 주요건축물
3. 폼페이
1) 폼페이의 발굴과정
2) 폼페이의 지배세력
3) 폼페이의 도시공간
4.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서기 79년 8월24일 아침. 지체 높은 로마 시민들의 여름철 휴양 도시인 폼페이는 바쁘고 활기에 넘쳐 있었다. 나폴리로부터 12㎞ 떨어진 베수비오산 기슭에서 사루누스강 어귀에 세워진 항구 도시 폼페이는 로마제국의 화려함을 잘 나타내 주는 사치스러운 도시였다.
베수비오산은 이따금 연기를 내뿜었지만 16년 전 폭발한 뒤로는 그때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 사람들은 가끔 연기를 뿜는 모습이 오히려 폼페이의 경관을 더욱 멋지게 꾸며 주고 있다고 말했다. 정오쯤,며칠째 계속되던 땅의 흔들림이 갑자기 거세지더니 곧 베수비오로부터 하늘을 뒤덮는 버섯구름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사람들이 미처 몸을 피할 사이도 없이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산꼭대기가 갈라지면서 뜨거운 화산재와 용암이 비 오듯 쏟아졌다. 4시간쯤 지나자 인구 2만명 가운데 2,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새들은 날다가 낙엽처럼 떨어졌고,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짐승들도 숨을 곳을 찾아 갈팡질팡했다. 화산은 쉴새없이 터졌고, 검은 연기와 불꽃이 하늘을 완전히 가렸다.
폼페이와 함께 베수비오스 산기슭에 세워진 헤르쿨레늄도 똑같은 불행을 당했다. 그러나 두 도시는 서로 다르게 파괴되었다. 헤르쿨레늄에는 화산재와 비, 용암이 뒤섞인 진흙이 쏟아졌다. 그것은 무려 20m 두께로 덮여 이 도시를 영원히 잠재웠다. 폼페이는 이와 달랐다. 흙탕물 대신 잿가루와 경석들이 우박처럼 쏟아졌고, 유황 연기가 그 뒤를 따라 도시를 덮침으로써 모든 생명을 질식시켰다. 그 당시 베수비오산의 폭발은 폼페이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재앙과 같은 일이었지만 이 재앙으로 인해 갑자기 묻혀버린 폼페이시는 현대에 발굴되어 그 당시의 생활상을 다른 유적에 비해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한 폼페이의 도시공간을 살펴보는데 앞서 폼페이는 로마의 식민도시이므로 로마의 도시공간의 특징을 알아봄으로써 폼페이 도시공간을 로마의 것과 비교하여 그 특성을 알아보고자 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