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설 선생에 대한 전기
- 최초 등록일
- 2007.06.16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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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상설 선생의 일대기와 일제시대 그의 독립운동사에 대해 자세히 정리한 레포트 입니다.
목차
1.출생과 활동이전의 생활
2.을사늑약 당시의 활동
3.국외에서의 활동과 헤이그 특파사건
4.그 밖의 활동
5.이상설 선생에 대한평가
본문내용
1904년 일제는 한국을 “보호국”으로 예속시키고 경제적으로 이권확대를 목적으로 1904년 5월 「대한시설강령」을 결정하였다. 그 가운데 「대한시설강령」은 한국의 농업과 “황무지 개간권”의 장악을 명시하고 있었다. 즉 한국을 일본의 식량과 원료의 공급지로 개편하고 한국에 일본인의 이민을 대대적으로 실시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일제는 한국정부에 황무지 개척권을 요구하였는데, 그 소식이 알려지자 유생들과 전직관료들의 반대상소가 빗발쳤다. 선생도 그 해 6월 22일 박승봉과 연명으로 황무지 개척권 요구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고, 이어 그 반대운동을 일으켰다. 선생이 올린 상소의 요지는 일본의 요구를 물리치지 않으면 국권을 지킬 수 없으며 황무지의 개척을 자국민이 하지 않으면 국가재정이 파탄될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일본의 요구를 물리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선생의 상소가 있은 후에 일제의 황무지 침탈을 저지하기 위한 단체로 보안회가 조직되어 활동하였으며, 「대한매일신보」,「황성신문」등의 언론에서도 일본의 불법행위를 규탄하게 되자, 일제도 황무지 개척권 요구를 철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왕 같이 이상설 선생은 황무지 개척권 반대운동에 참여하는 등 당시 일제에 의한 이권 침탈에 반대하여 분연히 떨치고 일어났다. 이 당시 또한 일본은 러일전쟁이 자국에 유리하게 전개되어 가자 이 틈을 이용하여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한 음모를 진행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한국 병탄의 기본정책을 확정해 놓고 외교활동을 통해 열강들에게 한국 침략을 승인 또는
참고 자료
1.윤병석, 근대한국 민족운동 사조, 집문당 ,1996
2.역사문제 연구소, 인물로 보는 항일 부장투쟁사, 역사비평사,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