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멸망 후 발해유민의 동향 - 요,금,고려 속의 발해유민
- 최초 등록일
- 2007.06.11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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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발해 멸망 이후 발해인들의 유망이 나타나게 되었던 배경
발해 유민들이 요, 금에 동화되어가는 과정,
발해 유민들의 고려 유입 배경이 되었던 거란의 이주정책과 고려태조의 북방정책 및 수용태도
고려로 들어온 발해 유민들이 고려 사회에서의 활약
목차
Ⅰ. 머리말
Ⅱ. 본문
1. 발해멸망 이후 발해유민의 동향
2. 발해유민의 거란에서의 활동(요,금)
3. 발해유민의 고려유입
4. 발해유민의 고려에서의 활동
Ⅲ.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신라와 후백제는 물론 발해 유민까지를 포함한 민족의 통일이라는 점에서 고려왕조의 후삼국통일은 최초의 완전한 민족통일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발해 유민의 고려로의 합류는 그만큼 역사적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 시기 발해 멸망과 함께 발해 고토에서 발생하게 되었던 발해 유민들의 동향에 대해 알아본 다음, 발해 유민의 고려 유입 배경과 고려사회에서 이들의 활동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첫째, 발해 멸망 이후 발해인들의 유망이 나타나게 되었던 배경과 둘째, 발해 유민들이 요, 금에 동화되어가는 과정, 셋째, 발해 유민들의 고려 유입 배경이 되었던 거란의 이주정책과 고려태조의 북방정책 및 발해유민 수용태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려로 들어온 발해 유민들이 고려 사회에서 어떻게 활약했는지 살펴 본 글이다.
Ⅱ. 본문
1. 발해멸망 이후 발해유민의 동향
발해의 마지막왕 대인선(906~926)이 통치하던 시기는 당이 멸망하고 후당(後唐,923~936)이 건국되는 초기에 해당된다. 이러한 동아시아 세계의 혼란을 틈타 10세기 초 거란족의 아율아보기(907~926)가 두각을 나타내어 916년에는 거란국을 건설하고는 중국의 중원지방을 차지하기 위한 정지 작업의 차원에서 동쪽의 발해를 공격하기 시작하여 천현(天顯) 원년(926) 正月에 홀한성을 함락하면서 발해를 멸망시키었다.
참고 자료
고구려연구재단,『북방사 논총』, 2006
- 최규성, 「발해유민의 고려 유입과 역할」
- 김재선, 「거란의 발해유민 이주정책 요인」
- 한규철, 「발해유민의 고려투화」
강만길 외,『한국사 3』, 한길사, 1994.
서병국,『펼쳐라 고구려』, 서해문집, 2004.
서병국,『발해국과 유민의 역사』, 대진대학교출판부, 2000.
이덕일,『살아있는 한국사 2』, 휴머니스트,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