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어학]다산 정약용의 여전제와 그 문제점
- 최초 등록일
- 2007.05.08
- 최종 저작일
- 2006.12
- 11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다산 정약용의 토지개혁제도 여전제에 관한 설명과
담겨있는 실학사상, 문제점에 대해 썼습니다.
다산의 토지제도 논문 <전론(田論)>
목차
머리말
다산 정약용
여전제에 담겨있는 실학사상
여전제의 문제점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 다산 정약용의 저서
조선 시대의 실학 사상은 두 개의 흐름을 갖고 있었다. 농업 문제를 중심으로 토지, 조세, 군사, 교육 등의 개혁을 추구한 경세치용 학파와 농업뿐 아니라 상업과 공업의 진흥, 기술 혁신 등 물질의 발달을 추구한 이용후생 학파(북학파)가 그것이다. 대체로 경세치용 학파는 다산 정약용이, 그리로 이용후생 학파는 연암 박지원이 대표자라 할 수 있다.
중략..
다산 정약용은 조선봉건왕조가 붕괴과정에 있던 18세기 후반에 태어나 오랜 관료생활과 유배생활을 통해서 당시 사회의 모순을 몸소 체험한 유교주의 관료학자였으며 한국 실학을 집대성한 실학의 거봉으로서 우리나라 사회의 경제사상 전체에 특이 할만한 업적을 남겼다. 다산이 활동하던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엽은 국내적으로는 정치·경제적으로 협잡과 부패가 심각하였으며 이는 당쟁과 어울려 국가와 민족의 곤궁이 극에 달하여 도처에서 민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서구의 자본주의 경제세력이 잠입되고 있었으며, 서구 정신의 본체인 기독교 사상의 이식이 이루어지고 있던 시대였다.
다산 정약용은 경기도 암행어사(34세)를 거친 뒤, 정조 임금이 죽자 노론의 탄핵을 받아(정약용은 남인임) 유배를 가게 되고, 전라도 강진의 유배지에서 주로 저술에 몰두하였는데, 목민심서는 주로 지방 정치, 경세유표는 주로 중앙 정치에 관한 개혁론을 담은 책이다. `탕론`이 <정치인론>이라면, 전론(田論)은 <토지론>이다.
참고 자료
강만길, 다산의 정치경제사상, 창작과비평사, 1996
금장태, 다산 정약용, 살림출판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