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을 읽고
- 최초 등록일
- 2007.04.08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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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표지없이 3쪽의 글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어제
2. 형용모순의 바자로프-오늘
3. 혁명이란 인간에 대한 이해-내일
4. 그리고 맺음말
본문내용
2. 형용모순의 바자로프-오늘
투르게네프는 러시아의 정치적, 사회적 조건의 전환과정에서 나타나는 혼란과 갈등, 그 속에서의 인간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오랜 상징을 차용한다. 당연히도 아버지는 구체제와 관습, 인식이고 아들은 새로운 사회를 향한 지향을 둘러싼 모든 것이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은 조화될 수는 있지만, 결코 일치될 수는 없다. 그것은 역사이다. 화해와 조화는 일면 아름다워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낡은 모든 것들이 일선에서 물러난다는 암묵적 합의하에 의한 것이다. 한 번 아버지가 된 이들은 다시 아들로 돌아오지 못한다. 1860년대 러시아에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였다. 귀족 자유주의자와 새로이 등장하는 잡계급 출신의 민주주의자가 대립하고 그들은 결말에서 화해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것이 진정 화해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형식이 그러할 뿐이다.
「아버지와 아들」에서 부자父子가 진정으로 화해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아마도 통속적인 그저 그런 미담에 소설이라는 외피를 씌운 것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투르게네프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외려 그는 새로운 것을 주창하는 아들의 모습을 아버지의 그것과 그리 많이 다르지 않은 캐릭터로 그려낸다.
바자로프는 일체의 권위와 증명할 수 없는 기성의 잣대를 단호히 부정한다. 모든 것을 부정하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사회를 냉소하는 그는 니힐리스트를 자처한다. 파괴를 자신의 사상으로 믿는 것처럼 보이는 그는 증명할 수 있고, 비판에 여과된 사실만을 믿고, 나머지 일체의 것들은 믿지 않는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