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비문이 알려준 고구려사
- 최초 등록일
- 2007.03.25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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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자료 괜찮습니다. ^^
목차
비문의 성격
본론(내용)
1
2
..
일본 왜곡의 서술
본문내용
국내·외 많은 고구려사 연구자들은 비문에 기록된 백잔(백제)과 신라 관련기사들을 마치 광개토왕이 정복사업을 벌렸던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고구려가 백제와 신라를 정복하여 그 나라를 멸망시킬 의도가 있었다면 훨씬 이전에 그 일을 해치우고도 남았다. 고구려는 멸망할 때까지 백제와 신라를 `아래채에 사는 머슴` 정도로 생각하고 외적을 막는 방패로 사용했다. 백제의 경우 가끔 혼줄을 내주기는 했으나 멸망시키려는 뜻은 없었으며, 신라는 그 왕으로 능지기를 삼고 있었기 때문에 혼내줄 일도 없었고 또 그렇게 하지 않았다. 따라서 비문에 기록된 왕토(往討)나 궁솔왕토(躬率往討) 등의 기사를 가지고 신라나 백제의 토벌군이 움직인 것으로 알면 크게 어긋난다. 이때 왕은 고구려의 선왕들이 묻혀 있는 지역으로 백제가 들어와 능묘지기들의 업무를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정비한 것이다. 그래서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에는 이 사실을 기록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비문에 기록된 토벌기사를 마치 백제와 큰 전쟁을 벌린 것으로 보면 안된다. 역사기록에 써넣을 수 없는 사항이라도 아들이 아버지의 훈적을 적고자 할 때에는 이 국경정비사업은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것일 수 있다. 따라서 비문에 기록된 북쪽의 숙신(帛愼) 남쪽의 백제(百殘) 서쪽의 동부여(東夫餘)에 관한 기사들은 국경을 정비한 기사일 뿐 전쟁기사가 아님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