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충남 보령을 다녀와서
- 최초 등록일
- 2007.02.05
- 최종 저작일
- 2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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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대학교 한국사 시간에 작성한 충남 보령을 다녀온 답사기입니다.
글자크기10 문단간격160이며 직접 작성하였습니다.
성적은 A+ 이고 후회하시지 않을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성주사지
3. 낭혜화상백월보광탑
4. 화암서원(花巖書院)
5. 신안서원(新安書院)
6. 보령향교(保寧鄕校)
7. 남포향교(藍浦鄕校)
8. 오천향교(鰲川鄕校)
9. 오천성지(鰲川城趾)
10. 당치(堂峙)
11. 경순왕(敬順王) 경모전(敬慕殿)
12. 웅천(熊川)의 오석(烏石)
본문내용
충남 보령을 다녀와서
1. 들어가며
이번 역사기행에는 백제의 혼과 넋이 깃든 충남 보령을 다녀오게 되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결기군 신촌현으로 불리우다 신라시대에는 웅진도독부에 속한 13현중 산곤현이었다가 통일신라시대 웅주도독부 치하에 결성군 신읍현으로 명명되어온 보령시는 비록 고즈넉한 지방 도시에 불과했지만 문화재 탐방을 통해 그 고요한 이면에 숨겨져 있는 문화재의 숨소리를 느끼고 난 후 보령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 내게는 특별한 도시로 기억될 것 같았다.
2. 성주사지
삼국사기(三國史記)또는 삼국유사(三國遺事)또는 성주사(聖主寺)는 백제(百濟) 법왕(法王)때 초창(初創)된 오합사(烏合寺)가 지금의 성주사지(聖住寺址)라 한다. 이처럼 사적 307호인 성주사지 절터는 충남 보령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일설(一說)로는 신라(新羅)제 42대 흥덕왕(興德王) 2년(827) 에 무염국사(無染國師)가 도력(道力)으로 침입한 왜구를 물리친 은혜를 갚기 위하여 나라에서 이 절을 짓고 웅신사(雄神社)라 하였다. 하는 전언(傳言)도 있으나 1960년부터 출토되는 비편(碑片)으로 보아 여기 절은 문성왕대(文聖王代重)에 이르러 당(唐)나라에서 돌아온 무염(無染)을 맞아 크게 중창(重創)한 원당(願堂)이 틀림없다.
옛 절터답게 성주사지 절터는 백제 법왕이 왕자시절인 599년에 전쟁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절이라고 한다. 원래 이름은 오합사였으나 신라가 통일을 이룬 이후 크게 중창되었다. 백제 왕실이 오합사를 애지중지 하였다는 점을 살펴 볼 때 특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참고 자료
직접 작성 및 각종 참고자료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