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최초 등록일
- 2006.09.09
- 최종 저작일
- 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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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 관한 감상문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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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믿거나 말거나 영화에는 두 가지 장르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예술영화와 상업영화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구분은 어떠한 기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일까? 문자 그대로 예술성을 추구하면 예술영화이고 상업성을 추구하면 상업영화인가? 그러나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이러한 구분은 본질을 왜곡하는 어리석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구분의 기저에는 ‘고급과 저급’의 이분법의 논리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어떻게, 왜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쉽게 풀 수 있다. 소설이 근대 시민사회의 산물이듯이 영화 역시 20세기 산업화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쾌락적 욕구를 채워주기 위한 산물이기 때문이다.
문제를 약간 바꿔 문학으로 넘어가 보자. 소위 ‘본격소설’과 ‘대중소설’을 나누는 경계는 무엇인가? ‘고급과 저급’의 문제인가? 그러나 영화가 관객과 관객의 관심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듯이 소설 역시 독자와 독자의 관심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여기서 소위 밀리언셀러라 불렸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통해(단편적이긴 하지만) 대중소설이 가지는 특성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결론적으로 일본의 한반도 공격과 그에 맞선 남북한의 대일 핵 공격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그려내고 있다. 이 소설은 전형적인 선과 악의 대결 구도, 추리소설적 구성, 핵무장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 신비에 쌓인 인물의 등장, 급속한 사건 진행,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등 독자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만한 요인을 두루 갖추고 있다. 진실성이 떨어져 보이는 소설적 설정과 결말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간행 이후 폭발적인 판매고를 올리며 대중들을 매료시켰던 이유는 무엇일까?(아마 필자의 기억으로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라디오 광고를 수백 번 들은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사회에 불고 있던 민족주의, 박정희에 대한 향수 등이 소설에서 지향하는 정서와 잘 부합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핵보유’를 통해 민족 전체의 이익을 우선하는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적인 일본에 대한 적대감과 대결 의식, 나아가 우월의식을 내보임으로써 당시 독자들의 내면에 자리잡은 민족주의적 감정을 만족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기억으로는 이 소설은 평단에서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소설은 왜곡된 역사 의식을 보이고 있고 과거에 대한 반성적 성찰도 없이 ‘힘의 이데올로기’에의 신봉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문학적으로는 평가할 가치도 없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수백 만 명이 읽었던 작품치고는 너무 인색한 평가가 아닌가? 아마도 이러한 평가의 기저에는 소위 ‘본격소설 = 고급문학’, ‘대중소설 = 저급문학’이라는 도식이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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