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조경]용주사/윤건릉
- 최초 등록일
- 2006.06.27
- 최종 저작일
- 2006.04
- 1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경기도 화성군에 있는 용주사와 윤건릉 답사 레폿입니다
조경사 공부하는 사람이나 건축 조경쪽 레폿쓸때 유용한 자료입니다
목차
1.용주사의 배치를 축과 단의 차이를 들어 설명하시오.
2. 용주사에 있는 점경물의 형태와 기능을 설명하시오
3.용주사의 특징을 조선시대 일반적인 사찰과 비교하시오.
4.능역의 공간구성을 풍수적인 측면을 들어 설명하시오.
5.능역고안에 주로 식재되는 수종을 쓰고 그 이유를 설명하시오.
6.융건능의 석물에 대해서 설명하시오.
7.정조의 효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을 용주사와 융건릉에서 찾아보시오.
8. 용주사와 융건능을 답사하고 느낀 소감을 기술하시오.
9.용주사와 융건능 만년제 앞에 단독주택과 아파트 건설이 예정되고있다. 개발 허용범위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서술하시오
본문내용
1)용주사는?
용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이다. 1790년(조선 정조 14) 사도세자의 능인 현륭원의 능사로 활용하기 위해 보경 사일이 팔도도화주가 되어 철학 등과 함께 팔도 관민의 시전 8만 7천여 냥을 거두어 갈양사 옛터에 145칸의 건물을 세워 창건했다. 갈양사는 854년(신라 문성왕 16) 창건되어 952년(고려 광종 3) 소실된 절이다.
1789년 정조는 비봉산에 초라하게 있던 사도세자의 능을 수원으로 옮기고, 이듬해 장흥 보림사의 사일을 도총섭으로 임명하여 이 절을 창건했던 것이다. 창건과 동시에 이 절은 전국 5규정소의 하나가 되어 승풍을 규정했다. 1851년(철종 2) 서별당을 지었으며, 1894년(고종 31) 지장전을 지었다.
그 뒤 1900년 용해가 중수했고, 1911년 31본산의 하나가 되어 수원과 안성, 남양, 죽산, 진위, 음죽, 용인, 고양, 시흥 등에 있는 48개 절을 관장했다. 1931년 대련 일형이 중수했고, 1955년 관응이 불교전문강원을 개설했다. 1966년 주지 희섭이 동국역경원의 역장을 두었고, 1969년 전강 영신이 중앙선원을 설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병자호란 때 소실된 후 폐사되었다가 조선시대 제22대 임금인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경기도 양주 배봉산으로부터 이 부근인 화산으로 옮기면서 현릉원(뒤에 융릉으로 승격)이라 하고, 보경 스님을 팔도도화주로 삼아 갈양사 옛터에 절을 지어 현릉원을 관리하는 능사로 원찰로 삼았다.
말하자면 정조의 효심이 가람 전체에 가득 스며들어 있는 것인데, 용주사를 ‘효심의 본찰’이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이러한 까닭에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