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인의 전원과 시대의 거리” - 김동명 시인을 찾아서
- 최초 등록일
- 2006.05.16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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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시인의 전원과 시대의 거리” - 김동명 시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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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내 마음은 호수요 / 그대 노 저어 오오’
정규교육의 세례를 받은 자라면 익히 수차 들어본 바가 있는 싯귀일 것이다. ‘선친’이라는 표현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이 글의 작자는 시인 김동명의 아들인 모양이었다. 우리가 작가론을 다룰 때 가장 염두해야 할 기본적인 태도는 바로 ‘객관성’에 기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친’이라는 단어가 암시하는 것은 안타깝게도 그 부분의 결여를 의미다. 이 글의 경우, 혈연이란 관계는 객관적인 논평을 일차적으로 흐린다. 비단 ‘선친’이라는 단어가 지닌 필연적인 우호관계가 아니더라도 이 글은 대체적으로 산만한 논지와 주관적이고 배타적인 평으로 일관되어 작자의 아버지에 대한 회고록 이외의 의미를 주지는 못하는 듯하다.
김동명 시인은 일찍이 아름답고 참신한 비유로 문단에 그 명성을 떨쳤으나, 평가절하 되어 제대로 된 연구와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비운의 시인이기도 했다. 작자가 재차 반복했듯이 시인의 시상이 목가적이고 낭만적이라는 인식으로 고정되어 있는 탓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은 또한 아닌 것이다. 이 부분에서 작자의 논리의 빈약함이 드러난다. 작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에 걸쳐 강조한 것은 그의 선친께서(김동명 시인을 지칭한다) 일제의 무단통치에 맞서 고국의 언어를 지키기 위해 창씨개명을 거부한 채 펜을 꺾었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당시 한국의 문인으로서 택할 수밖에 없었던 몇 안 되는 길 중 하나였다. 크게 나누어 볼 때, 친일을 택해 황국신민을 자처하거나 일제에 저항하는 문학을 양산하거나 현실을 외면한 채 자연으로의 귀의를 택하거나 이 세 가지를 들 수 있겠다. 엄밀히 따지자면 김동명 시인의 해방 이전의 시풍은 지극히 서정적이고 한량적인 마지막 케이스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자의 토로는 또한 온당하지 못하다. 펜을 꺾는 것 대신 일제의 강압과 고문에 맞서다 순고하게 그 어린 넋을 잃은 윤동주나 한용운 등의 공훈에 비하면 당시 전원파나 청록파로 불리우던 몇몇 시인들과 김동명의 시상은 너무도 한가롭고 아름다운, 다시 말해 왜곡된 현실에 불과하다. 그것은 작자의 회고에서도 이미 드러나 있는 바이다. 이 글의 작자가 그려놓은 김동명 시인이 외정의 발톱을 피해 은신해 있던 곳의 정경은 비록 창씨개명과 일어를 거부했다고 해도 감히 정당화 될 수 없는 현실에서의 도피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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