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이번에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이것을 적게 되었는데, 예전부터 이순신 장군에 대해 여러 가지 의문점들이 있어서 그 의문점을 생각해본다.그중에 이순신 장군의 죽음에 관한 몇 가지 학설 즉 은둔설과 자살설 그리고 정말 조총에 맞아 돌아가신 것으로 나뉘어 생각하고 있다. 조총에 맞아서 이순신 장군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은 처음 한편으론 믿고 있었는데 여러 가지 생각하면서 이게 아닐 수도 있다는 의문점을 가지게 되었다. 우선 조총에 맞아 돌아가셨다는 것은 옛날 일본의 조총의 사정거리(10미터 내외라고함)를 생각했을 때 백병전이 아니고선 도저히 맞출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또한 이순신 장군께서 타고 계신 판옥선 지휘배가 백병전을 하는 것은 또 아니라 본다. 그리고 판옥선 꼭대기에 계신 이순신 장군을 어떻게 맞출 수 있을까? 아니 맞았다고 해도 그런 총의 위력으로는 그 사정거리에서 당시 갑주를 뚫지 못하고 맞추었다 해도 치명상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여러 가지 의문을 가지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과연 정말 조총에 맞아 돌아가신 것일까? 여기에 의문을 많이 느껴 선생님이나 다른 친구들에게도 조언을 구해봤지만, 전부 조총에 맞아 돌아가셨다는 이야기 밖에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들에 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이 의문점을 꼭 풀었으면 좋겠다.
목차
1.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하게 된 동기2) 이순신 장군
3) 이순신 장군의 죽음의 의문점
4) 여러 가지 설의 의문점
5) 이순신 장군의 죽음에 대한 나의 생각
본문내용
3) 이순신 장군의 죽음의 의문점이순신 장군은 적탄에 맞았으면서도, 인간적인 원한 섞인 단말마의 비명도 아닌 극히 이성적이며 어찌 보면 `성스러운` 유언이라 할 수 있는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라고 말하며 어찌 보면 한국의 위인전의 지나친 영웅주의가 반영된 것이 아닌가하고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그리고 이렇게 볼 때 이순신의 전사 장면에 있어서 의심스러운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
왜 이순신 장군은 `마지막 해전`에서 전사하였는가? 마지막 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갑옷을 입지 않고 지휘하였다는 주장은 또 무엇인가?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이후의 함대의 지휘를 왜 직 속 부하 장수가 아니라 신참인 그의 아들과 조카가 맡았는가? 그리고 왜 이순신 장군은 사망 후 80일이 지난 뒤에야 장례식을 치렀으며, 또 15년 뒤에 묘지를 이장하였는가? 이순신 장군의 전사 장면에서의 이러한 수많은 의문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고, 결국 이로 인해 이순신 장군의 사망에 있어서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한 상황이다.
이순신 장군의 죽음에 관해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중 세 가지의 추측이 있는데, 첫 번째는 실록의 글대로 1598년 노량해전에서 왜군의 총에 맞아 전사한다는 것이다. 이 죽음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어서 자살이 아닌 전사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노량해전 이후 15년을 운둔해서 살았다는 주장인데, 간단히 말하면 이순신 장군이 사전에 시나리오를 준비해서 측근들과 친척들의 도움으로 죽음을 가장한 뒤 16년간을 숨어서 살았다는 주장이다. 16년이라는 근거는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이 있은 16년 후에 이순신장군의 묘가 이장한다는 것을 말하고, 묘를 이장한 시점이 곧 이순신 장군의 진짜 죽은 시기라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KBS 사극 불멸의 이순신 에서 말하는 것처럼 자살설이다. 당시 선조와의 갈등을 알고 있던 이순신 장군이 조총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갑주를 벗음으로써 죽음을 스스로 자초하였다는 주장이 있다. 죽음이 무엇이던 간에 당시 영웅 소리를 들으며 입지와 권위, 명성 등이 선조의 마음을 위협했다는 상황은 사실이다. 선조는 중간에 이순신을 옥에 가두는 등 그 명성과 지위를 꺾으려 했지만 꺾을 수가 없어서, 그만큼 이순신에 대한 부담감이 상당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참고 자료
1) 최두환 : 충무공 이순신 전집 제6권 (도서출판 우석, 1999) p468~92) 남천우 : 유물의 재발견 (도서출판 학고재, 2000) p349∼350.
3) 최두환 : 새 번역 난중일기(학민사, 1996), p361~2, p359
4) 가다노 쯔기오 : 이순신과 히데요시(도서출판 우석, 1997), p299∼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