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학사논문입네다...
목차
Ⅰ.머리말
Ⅱ.三別抄의 成立과 性格
Ⅲ. 三別抄의 抗爭
Ⅳ 맺음말
본문내용
Ⅰ.머리말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나라의 침략을 받아왔었다. 고대의 가장 강성한 왕국이었던 고구려(高句麗)의 수.당 전쟁을 비롯해서 근대의 일본의 침략까지..
그렇지만 고려(高麗)시대 이전까지 수많은 이민족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결코 무릎 꿇지 않았던 민족이었던 우리가 고려(高麗)시대에 몽고의 침략에 의해 치욕스런 강화 조약을 맺고 결국은 속국으로 전락하는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치욕적인 상황 하에서 끝까지 자주 항전의 의지를 불태운 군대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삼별초1
이었다. 삼별초(三別抄)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는 삼별초가 활약했던 고려 무신정권 시기에는 어떠한 일들이 있었으며 고려는 어떠한 상황에 처해져있었던 것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13세기의 고려(高麗)는 내외적으로 커다란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안으로는 묘청(妙淸)의 난(1135, 인종13)과 무신의 난(1170, 의종 24) 이후로 어지러웠고 밖으로는 고종(1213~1259)이 즉위하던 시기에 대륙에서는 몽고(蒙古)가 일어나 금(金)나라 대신에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하면서 1231년(고종18)부터 근 30년 가까이 고려를 침략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삼별초의 항쟁은 1270년부터 1273년 사이에 강화도에 있던 삼별초가 진도,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겨가며 몽고와 고려의 친몽세력에 반대하여 일으킨 항몽 투쟁을 말한다.
남해 일대의 제해권을 장악한 삼별초는 한때 거제, 탐라 등의 30여 도서를 지배하여 하나의 해상(海上) 왕국을 이루었다. 특히 진도를 거점으로 고려를 압박하여 몽고에 최후까지 대항한 세력이었다.
삼별초(三別抄)는 고려정부와 몽고의 결탁아래 이루어진 강화에서 개경으로의 환도(還都)를 반대하고 이후 진도, 제주도를 거점으로 1273년(원종14)까지 최후항전을 전개함으로써 대몽항쟁사의 최후를 장식하였다.
이러한 삼별초의 대몽항쟁은 몽고에 대한 고려의 속국(屬國)화를 막으려던 민족적인 저항과 자주성을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본고에서는 먼저 삼별초의 성립과 성격을 알아보고 강화도(江華島),진도(珍島), 제주도(濟州島)를 거치는 항쟁의 전개과정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또 이러한 항쟁과정에서의 영향과 항쟁의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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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1. 사료
·『高麗史』
2. 단행본
· 윤용혁, 『고려 삼별초의 대몽항쟁』, 일지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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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종, 『삼별초 그 황홀한 왕국을 찾아서 상,하』, 바들산, 1994
· 유현종, 『무인시대와 삼별초』, 대산, 2003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국사편찬위원회, 1977
· 삼별초, 『삼별초』, 지식산업사, 2005
· 이승한, 『고려무인 이야기』, 푸른역사, 2001
· 장유정, 『무신정권』, 능인, 2003
· 김정한, 『삼별초』, 시와사회사, 1994
3. 참고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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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기, 「삼별초와 그 난에 대하여」, 진단학보, 1994
· 윤용혁, 「삼별초 진도정권의 성립과 그 전개」, 한국사연구, 1994
· 윤종영, 「삼별초를 따라 상,하」, 한국문명학회, 2003
· 김충남, 「삼별초와 민의 대몽항쟁과 그 성격」, 서강대학교,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