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토탈리콜 - 테크니컬한 사회에서 위협받는 근대적 자아
- 최초 등록일
- 2006.01.27
- 최종 저작일
- 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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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억이 조작된 인간에게 자아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과연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고 말하는 근대적 자아는 유효한 것인지를 다룬 영화감상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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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아직 현대의학은 뇌가 어떠한 형식으로 작동하는지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인간의 감각과 사고는 뉴런들 사이에 작은 전기자극의 이동으로 이루어 진다는 사실 정도 밝혀졌을 뿐이다. 만약 보다 뇌신경구조의 정확한 메커니즘이 밝혀진다면 <토탈리콜>에서처럼 인간의 생각이나 기억을 조작하거나, 가상의 감각을 만들어내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극단까지 밀고 가보자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한 합리주의 철학자의 선언은 사실 신경의학적으로 “내 뉴런이 전기자극을 다른 뉴런에게 전달했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조롱하고 있는 것은 19세기부터 전 인류가 믿어마지 않았던 합리적 주체, 즉 cogito이다.
이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다양한 진실을 접하게 된다. 자신 원해서 주입받은 화성의 기억, 실제로 화성에 갔던 기억, 화성의 기억이 지워진 채 살아온 기억들. 이 기억들은 서로 충돌하고 우리의 cogito는 그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모든 것을 의심하던 데카르트가 마지막에 다다른 cogito는 테크놀로지의 기만 앞에서 더 이상 의심할 힘을 잃었다. ‘나’라고 주장하는 것들이 복수로 존재할 때, 그 존재는 그 중 어느 것도 아닌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부작용이 생겼다고 말하는 의사와 부인의 행동에서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주인공은 자신의 기억이 실제로 조작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한다. 그리고 결국 ‘의심하는 나’는 조작되기 전의 진실을 찾고, 자신의 기억을 조작한 음모를 밝혀낸다.
이러한 해피엔딩을 근대 합리주의가 주장하는 자아 – 존재론 적인 인간의 승리로 볼 수 있을까?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에서 테크놀로지는 기억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낸 기억을 거부할 힘도 진짜와 구분할 능력도 없다. 주인공은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조작된 기억과 싸우게 된 것일 뿐 만약 그런 계기가 없었다면 그는 평생 조작된 기억을 가지고 살아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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