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무령왕릉 조사
- 최초 등록일
- 2005.12.07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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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본 내용은 무령왕릉에 대한 발표를 위해 조사했던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 무령왕의 생애
3. 무령왕릉의 발굴상황
4. 무령왕릉의 다양한 유물
5. 무령왕릉을 통해서 본 당시 동아시아의 문화교류
6. 결론
본문내용
앞서 말했듯이 무령왕릉은 삼국시대의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주인공을 확인한 획기적인 발견과 수천점의 유물을 통해 그 시대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졸속발굴로 인해 그 후속연구는 지금에서도 초창기 수준을 맴도는 수준에 있다. 무령왕릉이 6세기 동아시아 문화사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유물들의 제작기법, 양식사 등은 여전히 학문적 미개지로 남아있으니, 교과서 설명이상의 탐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더욱 부끄러운 점은 오히려 일본쪽 학자들의 연구가 90년때까지의 무령왕릉 논의를 주도했다는 데 있다. 이토 아키오, 요시이 히데오 등의 일인학자들은 중국 등지의 방대한 외국자료를 섭렵해 자기네 역사와 연관이 있는 목관과 금동신발, 구리거울 따위의 유물교류사 연구를 수준급으로 끌어올렸다. 이들은 꼼꼼한 비교연구로 일본산 소나무로 만들어진 목관이나 청동거울, 환두대도 따위 금속유물들에 얽힌 백제와 고대 일본 문화교유양상을 규명해 무령왕이 일본서 태어나 왕 등극 전까지 살았다는 ‘일본서기’기록에 힘을 실어주었다.
일본과 중국의 활발한 역사 연구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도 그에 대응할 만한 역사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좀 더 과학적인 분석기법을 동원하고, 단순 유물탐구에서 벗어나 중국과 일본의 폭넓은 비교자료 수집등을 통해 답보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연구를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또한 역사에 대한 인식에 대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때, 학창시절 받아온 역사교육에는 우리나라의 독자성만을 강조하고 인식을 심어주고 있지 않은 가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주체성 확립의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보이나, 지나치게 이를 강조할 경우 국수주의와 배타주의적 사고관을 조장할 수 있다고 보여진다.
참고 자료
역사스페셜에서 무령왕릉에 대한 내용을 다룬적이 있는데 그것을 참고하셔도 무령왕릉에 대한 많은 도움을 받을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