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제 5공화국 시기 한국언론의 경향과 비평
- 최초 등록일
- 2005.11.21
- 최종 저작일
- 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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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제 5공화국 시기
한국 언론의 경향과 비평에 대한 글입니다.
목차
1. 전두환 정권의 언론정책
2. ‘3반언론’과 활발한 대항언론
3. 평가 및 결론
본문내용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9일간의 광주에서의 비극은 국민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통한의 큰 응어리만 남긴 채 계엄군의 무력진압으로 끝났다. 그러나 광주의 민주화 운동의 실상은 계엄당국의 엄격한 통제로 언론에 보도될 수 없었다. 광주가 진압된 후 5월 31일, 정부는 ‘광주사태’의 전모를 발표했다. 170명이 숨졌다고 밝혔다가 다시 189명으로 늘어났다고 추가 발표하는 등 지금까지 이 통계를 믿는 사람은 없다.
전두환은 광주항쟁을 유혈진압한 후 5월 31일에 국가 보위비상대책 위원회의 발족과 함께 상임위원장을 맡은 후 국정에 직접 간여하면서 결국 최대통령을 도중하차시키고 8월 27일 권자에 올라 ‘제 5공화국’이라고 규정했다. 전두환은 아직 전권을 장악하기 전부터 통치체제 구축 위한 언론장악을 구상했다. 계엄사의 보도검열단은 그날그날 보도지침을 정해 언론을 사전에 검열하여 보도여부를 결정했다. 비상계엄이 해제된 81년 1월 24일까지 1년 3개월 동안 국민들은 계엄군의 판단으로 조정된 뉴스만을 접해야했다. 신군부에 의한 ‘80년 언론대학살’의 1단계 조치는 언론인 해직이었다. 7월에 접어들면서 검열거부와 제작 거부에 앞장선 기자들과 반체제 언론인들을 악덕부패기자 숙정이라는 명분하에 추방했다. 88년 문공부는 80년 해직언론인이 총 7백 11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11월에 가서는 신문협회와 방송협회로 하여금 ‘건전언론 육성과창달을 위한 결의문’을 채택하도록 하여 언론계 스스로 통폐합을 하는 것처럼 교묘한 위장전술을 썼다. 80년 11월 전국의 언론사 63개사 중 3분의 2가 넘는 44개사가 통폐합되었다. 전두환 정권은 이렇듯 대중매체의 독과점을 조장함으로써 언론독점자본의 강화에 이바지 하는 한편 조종과 통제의 원활화를 통해 획일주의적 언론현상을 조성했다. 이와 동시에 유신독재 아래에서 묶여왔던 컬러 tv방영을 1980년 12월 1일자로 허용함으로써 3S(스포츠, 스크린, 섹스) 정책을 통한 우민화를 촉진시켰다.
참고 자료
새로쓰는 한국언론사 ‘김민남, 김유원, 박지홍, 유일상, 임동욱, 정대수’저 <아침>
한국의 저널리즘 ‘최서영’저 <커뮤니케이션 북스>
언론은 권력의 영원한 시녀인가? ‘박종렬’ 저 <진리탐구>
한국언론사 ‘김민환’ 저 <나남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