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역사] 플럭서스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5.06.04
- 최종 저작일
- 2005.06
- 9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1.플럭서스에 대하여
2.플럭서스의 특징
3.비디오 아트
4.대표작가
5.대표 작품
본문내용
개념으로서 예술이라는 관념으로 무장하고 삶과 예술에서 ‘우연’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긴 예술가들은 플럭서스로 대표되는 운동들로 창조성을 폭팔시켰다. 플럭서스는 '변화', '움직임', '흐름'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다. 플럭서스는 1960년대에 번성한 ‘복합 매체(intermedia)’예술운동으로, 특히 퍼포먼스, 영화, 극적으로는 비디오 영역에서 여러 가지 혁신을 꾀하였다. 플럭서스라는 용어는 리투아니아 출신의 미국인마키우나스(George Maciunas)가 1962년 독일 헤센주(州)의 비스바덴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플럭서스-국제 신음악 페스티벌'의 초청장 문구에서 처음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삶과 예술의 조화'를 기치로 내걸고 출발한 플럭서스 운동은 이후 베를린·뒤셀도르프 등 독일의 주요 도시들과 뉴욕·파리·런던·스톡홀름·프라하·일본 등 유럽·미국·아시아 등지로 빠르게 파급되어 전세계에서 거의 동시에 나타났다. 이는 플럭서스 작가들이 여행과 서신 교환 등을 통한 교류가 가능했기 때문인데, 그들은 엽서 형태의 콜라주나 소규모 작품을 우편을 통한 상호 교류, 즉 우편미술(메일아트)을 통해 교류의 폭을 넓혀 갔다.1963년 마키우나스는 뉴욕에 플럭서스 본부를 창설하고, 이듬해에는 히긴스(Dick Higgins)가 《섬싱 엘스 프레스 Something Else Press》를 설립해 1974년까지 플럭서스와 관련된 주요 서적들을 출간하는 등 이 시기를 전후해 플럭서스 운동은 전성기를 맞았다. 특히 플럭서스는 처음에는 미술에서 출발하였으나, 곧 예술의 어느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콘서트·이벤트·출판물·선언문 등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면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탈(脫)장르적인 예술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정신적인 면으로는 다다와 유사한(마키우나스의 선언문은 플럭서스를 ‘음악, 연극, 시, 미술의 네오다다’로 묘사했다) 아방가르드 운동 플럭서스는 반예술이었으며, 특히 미술관과 수집가의 독점적인 소유물이 되는 예술에대한 반예술이었다.
참고 자료
마이클 러시 저 <뉴미디어 아트>시공사
조기주 저 <이것도 예술이야?> 현암사
모니카 봄-두첸, 재닛 쿠그 저 <열려라 현대 미술> 아트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