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풍납토성 500년 백제 역사를 깨우다 - 풍납토성에 묻힌 백제 역사의 진실
- 최초 등록일
- 2004.12.23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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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비중이 큰 기말레포트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500page가 넘는 <풍납토성 500년 백제를 깨우다>를 정독하여 깔끔하게 요약하고, 의견을 개진하였습니다. ^^
목차
Ⅰ. 머리말
Ⅱ. 본문
1. 문헌기록을 통해 본 한성 백제의 왕성
2. 한성백제 왕성에 관한 학계의 입장과 한계
3. 어렵게 시작된 풍납토성의 발굴
4. 풍납토성의 발굴 성과
① 건물터와 전돌
② 기와
③ 거대한 성벽
④ 탄소 연대와 토기 연대
5. 빅뱅하는 백제 고대의 역사
① 식민사관으로 찌든 백제 역사
② 국사 교과서에 나타난 백제 역사의 문제
③ 초기백제와 『삼국사기』의 부활
Ⅲ. 맺음말
본문내용
<삼국사기>의 온조집단의 백제건국 기록에서 하남위례성은 비옥한 평야지대에 위치한 평야지대에 도읍을 정했다는 기록이외에 진사왕 7년에 ‘봄 정월에 궁실을 다시 수리하고 못을 파서 산을 만들어 기이한 짐승과 이상한 화초를 길렀다’라는 기록 역시 하남위례성이 평야지대에 위치한 성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한성백제의 왕성은 구릉지에 위치한 남성, 몽촌토성이 아닌 평야지대에 위치한 북성, 즉 풍납토성이라는 잠정적인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위와 같이 필자는 풍납토성의 고고학적 발굴성과가 아닌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의 기록을 토대로만 한성백제의 왕성인 하남위례성을 그동안 제 1순위로 지목되던 몽촌토성과 사학자 이병도가 말한 남한산성과 북한산성 등을 배제하고 풍납토성으로 보았다. 그러나, 문헌자료가 동시기에 쓰여진 것이 아니고, 고려시대에 와서야 쓰여졌다는 점에서 100%신뢰할 수 없다. 특히 <삼국사기> 중 온조왕 13년의 기록에서
[온조는 그해 가을 7월에 한산 아래로 나가 일종의 방어 시설인 목책을 세워 위례성의 민가를 그곳에다 옮기고 다음달에는 마한에 사신을 보내 도읍을 옮기겠다는 뜻을 미리 전달했으며 9월에는 15세 이상 장정을 징발해 궁성과 대궐까지 세움으로써 초고속 천도 사업을 진행하다 마침내 재위 14년째 정월을 맞이해 도읍을 옮겼다]
는 내용은 온조가 처음 도읍을 한강 이북에 세웠다가 하남 위례성으로 옮겼다는 정약용의 이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하므로 무조건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참고 자료
수업 강의 요약문의 <고대 지방제도와 성곽>
<풍납토성 500년 역사를 일깨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