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문] 율곡이이, 그의 삶과 흔적
- 최초 등록일
- 2004.11.23
- 최종 저작일
- 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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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율곡의 삶
2.시대적 배경과 율곡의 사상
가. 사회경제의 혼란
나.성리학파와 성리설
3.율곡선생의 시문학
4.신사임당과 율곡
가. 신사임당의 삶
나. 신사임당의 작품
5.관련유적
본문내용
이 이(李 珥)는 조선조 중종 31년(1536) 12월 26일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오죽헌에서 태어나 숙종 7년(1584)까지 살았다. 조선 중기의 학자, 정치가로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 석담(石潭), 우재(愚齋)이다. 강릉 출생으로 아버지는 증좌찬성 원수(元秀)이며, 어머니는 사임당 신씨(師任堂申氏)이다.
13세 때는 진사초시에 합격하였고 16세 때에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파주 두문리 자운산에 장례하고 3년간 시묘(侍墓)하였다.
20세 되던 해 봄 외가인 오죽헌으로 돌아와 자신의 스스로를 경계하는 11조항으로 이루어진 '자경문(自警文)'을 지어 삶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22세에 성주목사 노경린의 딸과 혼인하였고, 다음해 봄에 당시의 대학자인 퇴계 이황을 예안(禮安)의 도산(陶山)으로 찾아가 궁금한 점들을 묻고 답하였다.
그 해 겨울에 별시라는 과거시험에서 '천도책(天道策)'을 지어 장원하였는데, 시험답안은 그 당시 시관들을 감탄케 함은 물론 중국(명)에까지 전파되어 널리 이름을 알렸다. 이 때부터 스물 아홉에 응시한 문과 전시(殿試)에 이르기까지 아홉 차례의 과거에 모두 장원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 아홉 번 장원한 인물)'이라 일컬어졌다.
참고 자료
http://www.yulg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