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손진태의 역사민속학에 대한 설명과 그의 역사민속학에서의 여성담론을 분석한 논문입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1) 역사와 민속의 대비
2) 민속에서의 여성의 지위
3. 결론
본문내용
남창 손진태는 문헌연구와 비교연구를 통하여 민속에 대한 역사학적 연구를 하였다. 그리하여 민중생활사를 재구성하고 민족과 문화의 기원을 해명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 점에서 그의 민속학은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민속학'이나 '민족문화학'으로 바꾸어 불러도 좋을 만한 것이었다. 민속을 중심한 민족문화에 대한 관심은 신민족주의 사관으로 전개되었다. 손진태는 민속학자이자 역사학자였지만, 두 개의 독립된 학문에 종사했다기보다 어떤 면에서는 양자의 학문을 용해시켜서 한국민족과 그 문화의 본질, 그리고 그 역사를 규명하는 새로운 학문의 장을 열었다. 그의 역사민속학은 민속의 기원·역사적 전개·전파·독립발생을 철저히 캐는 일을 통하여, 민중생활사를 중심한 새로운 한국사를 구상하고 한국민족과 문화의 기초구성을 밝히고자 했던 것이다.이러한 손진태의 역사민속학은 민속학의 지적 구조가 안고 있는 역사적 한계를 가진다. 일제시기 즉 근대와 함께 성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반근대를 지향하는 민속학의 지적구조는 역사의 사실성, 현실세계에서 떠나 고대 중심의 민속으로 경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손진태의 민속학 또한 이러한 양의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 시대 역사학자들은 일제의 합병으로 이어지는 바로 전시대라 할 조선새대에 대하여 극도의 혐오감을 가졌으며, 조선시대에 대한 의도적 망각과 함께 고대사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손진태 또한 같은 맥락으로써 고대사를 민족의식의 발전과 조선시대 이후를 민족의식의 침체기로 보았으며, 민족의 기원과 민족문화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리고 손진태는 조선시대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였던 유고 이념을 부정적인 것으로 규정하여 민속의 전래와 발전을 막은 것으로 보고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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