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한국미술사 시간에 썼던 리포트입니다.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 화풍을 비교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쓰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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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는 글】
*조선 후기 풍속화의 유행 - 시대양식으로서 풍속화의 정착
【본 글】
1. 檀園 金弘道
(1) 단원의 전기
(2) 예나 지금이나 최고로 평가받는 풍속화가
1) 민중 삶의 풋풋한 정서가 가득한 30대의 풍속도
* 양반직 벼슬길에 오르면서 변화된 예술관
2) 완숙해지 50∼60대의 풍류적 사경풍속
(3) 김홍도 풍속화의 회화적 성과와 그 영향
2. 蕙園 申潤福
(1) 여인생활상에 관심을 쏟은 풍속화의 새 경향
(2) 색정이 물씬한 남녀의 애정행각과 도회생활상
3. 김홍도와 신윤복의 대표작품분석
【나가는 글】
【참고문헌】
본문내용
*조선 후기 풍속화의 유행 - 시대양식으로서 풍속화의 정착
윤두서라는 재야 성격의 선비화가에 의해서 일깨워지고, 선비관료 조영석이 본격적으로 민중 삶을 그렸으면서도 남에게 보이기 꺼려했던 풍속화는, 이후 여러 화가들이 일상의 사회생활을 포용하면서 18세기 후반에 확고히 자리잡았다. 성리학이념이 강고한 사대부 사회 속에서‘속화(俗畵)’로 멸시받던 풍속화가 확대 발전된 배경은 다음 세 가지로 집약해 볼 수 있겠다.
첫째, 18세기 풍속화의 회화성은 당대 화단에 축적된 사실주의 역량에 의해 크게 뒷받침되었다. 현실 대상을 표현하려는 창작태도와 회화관이 보편화되고, 같은 시기에 풍미한 진경산수의 현장 사생이나 초상화·동물화가 묘사력 증진에 힘입어 풍속화는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시대양식으로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둘째, 풍속화는 당대 문예계의 자주성 인식과 맥을 함께 하고 있다. 실학의 발전과 현실비판 의식의 형성, 속어나 민간어를 사용한 한시·한글소설·판소리 등 조선적 시문학의 등장은 바로 동시기의 시대정신으로서 풍속화의 유행을 부추겼을 것이다.
셋째, 조선 후기의 경제력 상승에 따라 기존의 신분질서가 동요하는 가운에 이루어진 서민문화와 민중의식의 성장은 풍속화의 발전을 촉진시킨 밑거름이었다. 민중의 현실적 삶이 문예의 보편적 표현 대상이 되고, 아울러서 그 그림을 공감하고 향수 하는 계층의 확산은 풍속화 발전의 힘이 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한편 민중의 생활상을 닮은 그림이 신분사회의 두터운 벽을 깨고 지배층 문화 속에 당당한 회화형식으로 정착되는 데는 백성들의 노고를 잘 알아야 한다는 유교사상의 본뜻도 작용하였다. 이미 고려시대부터 백성의 생산활동에 대한 감계화(鑑戒畵)적 성격의 무일도(無逸圖,《書經》)나 빈풍칠월도( 風七月圖,《詩經》)의 제작 사례들이 나타나고, 동일한 사상 아래 제작된 중국 경직도(耕織圖)류의 수용도 조선 초기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왔다. 여기에는 민중노동력의 소유와 노고의 이해라는 지배이념의 이중성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는 잘 알다시피 그 이념을 고스란히 적용하기 힘든 사회여건이 조성되었고, 변모된 양상은 풍속화의 발전 과정 속에 나타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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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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