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삼국의 각축전과 남한강 유역의 고대문화

등록일 2003.10.08 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1.삼국에서의 한강의 중요성

2.한강을 둘러싼 삼국의 지배과정의 시기

3.한강을 차지한 나라들의 흥망
1) 백제
2) 고구려
3) 신라

본문내용

백제가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룬 것은 고구려의 고국원왕의 선제 공격으로 촉발된 충돌이 있었을때 였는데, 이 때 백제의 근초고왕의 반격으로 좌절되고 이로써 백제와 고구려의 관계는 광개토왕대 이전까지 백제측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동시에 백제는 마한을 지배하게 되면서 남변에서도 상당한 진출을 보였고 고국원왕의 치양성 공격에서도 신라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다. 그리하여 평양성에서 고국원왕을 패사시켰다. 이 사건은 백제의 위상을 매우 높여 주었다. 하지만 고구려의 재공격으로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패사되어 백제의 웅진 천도가 불가피해졌다. 한성에서 금강유역의 웅진(공주, 475)으로 천도이후 백제는 왕권이나 영역에 있어서 상당한 회복을 보였으나 지배귀족 집단에 대한 장악이 되지 않았고 가야지역의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어 다시 웅진에서 사비(부여, 538)로 재천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재천도후 성왕때 안정된 백제의 고구려 공격선은 유동적이긴 하지만 한성지역을 넘어 상당히 깊게 유지되었다. 그러면서도 고구려의 남진거점은 중원일대에 형성되어 있었으므로 살수(괴산)이나 우산성(남한강 서남방)에서 삼국의 공방전이 가능했다. 이것은 중부내륙을 거점으로한 고구려의 백제, 신라 양국에 대한 측방공격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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