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로프의 생애
- 최초 등록일
- 2003.09.17
- 최종 저작일
- 20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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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 사하로프에 대한 소개
본론 : 사하로으의 생애와 업적
수소폭탄의 개발, 사하로프의 사상적 갈등 등
결론 : 사하로프의 생애를 통해 느낌 점
본문내용
모스크바 출생. 1942년 모스크바대학을 졸업, 1945년 레베데프 물리학연구소원이 되어, 이고리 탐 교수의 연구팀에서 수소폭탄 제조의 이론적 문제 해명에 성공, 과학아카데미 정회원이 되었다. 소련 핵물리학회의 중진으로서 구소련의 수소폭탄의 아버지라 불리며, 스탈린상과 레닌훈장 등을 수상하였다.
핵의 중대성을 자각, 핵실험 반대를 표명하였으며, 스탈린주의적 독재체제를 비판하여 1966년의 당대회를 앞두고 스탈린 명예회복 반대의 서한을 동지들과 연명으로 송부하는 등,반체제의 입장을 명백히 하였다. 1968년 논문 <진보 ․평화공존 및 지적 자유>를 발표하여, 민주화의 필요성을 역설함과 동시에, 미 ․소 제휴 이외에는 핵전쟁으로부터 세계를 구할 길이 없음을 지적하여 국제적 반응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였다.
1970년 소련인권위원회를 결성, 당국에 의한 반소활동에 대한 격렬한 비난과 탄압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1974년 있었던 솔제니친 추방 후로는 소련의 반체제지식인의 대표적 존재였으며, 1975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1980년 1월 국가에 대한 반역을 이유로 명예가 박탈당하고 니주니노브고로트시(市)에 국내추방되었다. 그 후 1986년 M.S.고르바초프 하에 있던 소련정부에 의하여 추방에서 풀려나 모스크바로 돌아왔으며, 1989년 소련방최고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어 활약한 바 있다.
다시 말해서 사하로프는 소련에서 인권, 시민 자유, 개혁, 비공산국가와의 화해를 거리낌없이 주창했다. 1975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으나 정부에 의해 1986년까지 소련 내에 유배되었다. 그의 아버지도 물리학자였으며 그의 탁월한 과학적 능력은 일찍이 알려졌다. 26세에 박사학위를 받았고 32세에 소련 과학 아카데미 정회원이 되었다. 그때 그는 몇 년 동안 이론물리학자로서 이고리 탐과 함께 소련의 첫 번째 수소폭탄 개발을 위한 연구를 해왔고, 탐과 함께 제어열핵융합에 대한 이론적 기초를 마련하기도 했다. 탁월한 소련의 과학자로서 그에게는 부와 명예가 주어졌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