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직의 보천탄즉사
- 최초 등록일
- 2003.08.26
- 최종 저작일
- 2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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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점필재 김 종 직’에 대해서
Ⅱ. 김종직의 시 보천탄즉사를 보며..
본문내용
Ⅰ. ‘점필재 김 종 직’에 대해서
1431년(세종13)~1492년(성종23). 조선 세종 때의 성리학자. 자는 계정, 또는 효관. 호는 점필재.
벼슬은 형조판서를 지냈으며 본관은 선산. 시호는 문간, 문충. 경남 밀양 출신. 조선 세종 13년 6월 경자일 갑자시에 밀양부의 서쪽 대동리에서 태어났다. 사예 김숙자 선생의 43세때 3남2녀의 막내로 태어 났다. 선생이 태어나실 때 마을 앞 냇물이 역류하여 흐르고, 물맛이 달콤하게 변하여 감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종직은 어릴때부터 아버지에게서 교육을 받았는데 총명하여 날마다 수 천자씩을 기억해 갔다고 한다. 아버지의 교육은 길재의 교육방법을 따라 동몽수지, 유학자설, 정곡편을 거쳐 소학, 효경, 대학 및 논맹 순으로 단계적인 과정을 철저히 밟고, 사서오경을 차례로 배웠지만 특히 소학을 학문의 기초로 삼고 어릴 때부터 시를 잘 하여 이름이 크게 떨쳤다.
1489년(성종20) 59세때 자헌대부 형조판서 겸 지경연 홍문관제학 성균관사를 공정하게 처결하니 조정이 감복하였다. 가을에 병으로 사임코저 하니 지중추부사로 자리를 옮겨 주었다. 성종의 은총이 심히 두터우니 시기하는 무리들이 많은지라 동래 온천에 목욕간다는 허락을 얻어 고향인 밀양으로 돌아왔다. 임금이 특별히 사관을 보내어 녹을 받으라 하였으나 재삼 사양하였다.
참고 자료
http://www.asanjang.com/aj-intro/aj-hero/kim-jongjik.htm (아산 장씨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