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과대(銙帶)의 기원과 변천
- 최초 등록일
- 2017.02.24
- 최종 저작일
- 20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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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중국 진대(晉代)의 과대
Ⅲ. 패식(佩飾)의 기원
Ⅳ. 삼국시대 과(銙)의 형식분류
Ⅴ. 삼국시대 과(銙)대의 변천
Ⅵ. 교구(鉸具)와 사미(鉈尾)
Ⅶ. 요패(腰佩)와 패식(佩飾)
Ⅷ. 결어
본문내용
Ⅰ. 서론
삼국시대 고분에서 출토되는 금속공예품들 중에서 과대, 요패장식은 그 시대의 특징적인 장신구로서 우리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다. 특히 신라지역의 과대, 요패장식은 양적으로도 많이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 등 주변의 여러 나라들과 비교해 보아도 그렇게 화려하고 다양한 허리장식을 사용했던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 삼국의 과대는 헝겊이나 가죽으로 된 허리띠에 교구, 과, 사미들을 못으로 고정시킨 것으로서, 특히 신라, 가야지역에서는 대형요패, 패식금구(佩飾金具)들을 과대 아래로 수하시킨 예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현재 삼국시대 과대류는 대부분 고분에서 피장자의 착장용 또는 부장품으로서 출토되고 있으며,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서 신라, 가야고분의 출토 예들이 절대적으로 많아서 아마도 지역적인 특색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는 원래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던 요대에 착용자의 신분이나 계급 등의 상징적인 의미가 더해지면서 띠의 표면에 문양이 투조된 금속제과(金屬製銙)들로 장식하고 그 아래로 대형요패, 패식금구들을 수하시키는 형식으로 발전된 것으로 추측된다.
원래 과대나 요패류의 패용풍습은 우리나라로 들어오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측되지만 정확한 기원 지를 밝히기가 어렵고, 다만 한대이전의 stppe지역 유목민족들 사이에서 실제로 필요한 물건들을 허리에 매달던 습성이 중국으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Ⅱ. 중국 진대의 과대
중국의 고문헌들에서는 대에 금구로 장식하는 습성을 모구 북방호족 기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어나 문헌마다 그에 관한 구체적인 서술이 부족하고 명칭과 표기하는 글자들이 각기 달라서 정확한 해석에 어려움이 있다.
중국 한 대(漢代) 호복(胡服)인 고습(袴褶)이 무인의 복장으로 들어와서 처음에는 하급에서 착용되던 것이 위대(魏代)에 들어서 관의 상하로 보급되었고, 이에 따르는 호대(胡帶)의 사용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