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조약 관련유적지 답사보고서(사진포함), 을사조약의 배경, 전개, 결과, 답사(덕수궁 중명전, 손탁호텔 터, 통감부 터, 한규설 대감가), 후기
- 최초 등록일
- 2017.02.02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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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여행 준비
1) 을사조약의 배경과 전개
2) 을사조약의 체결 결과
2. 여행 시작
1) 여행하기 - 1차 답사
2) 한규설 대감가 재답사 - 2차 답사
3. 여행 후기
1) 조원 문00
2) 조원 이00
3) 조원 전00
4. 여행 마무리 - 을사조약을 통한 현재 돌아보기
본문내용
1. 여행 준비
1) 을사조약의 배경과 전개
(1) 을사조약의 배경
임진왜란 이후 500여 년 동안 일본은 우리나라를 점령하기 위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국력의 차이가 있었고 그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와신상담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찾아온 기회가 바로 미국과의 조약 채결이었다. 미국과의 불평등 조약을 맺었지만 일본은 신문물을 차곡차곡 받아들였고 1868년에는 명치유신을 하여 근대국가의 토대를 다지게 되었다. 명치유신 이후 정한론이 슬슬 고개를 들개 되었고, 일본은 조선을 자신의 일부로 만들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게 된다. 이에 반해 조선은 양란 이후 피폐해진 국가를 재건하는 영정조의 시대를 통해 국력을 회복 하는 듯 했으나 정조가 죽고 난 후 어린 순조가 즉위하게 되고 왕의 외척이었던 일부 세력들에 의해 지배체계가 이뤄지는 세도정치가 이뤄지고 조선은 다시 피폐해지기 시작하였다. 대원군은 세도가문의 세도를 제거하고 부패한 조선을 개혁하였지만 세상을 보는 눈은 협소하여 일본인들을 짐승 보듯이 무시하였고, 열강의 통상요구에도 자신들의 문을 꼭꼭 잠근 채 우물 안 개구리처럼 버티었다. 결국 1875년 운요호 사건이 발단이 되어 강화도 조약을 맺게 되고, 그때부터 조선은 개항의 물꼬를 트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지배층의 보수적인 사고 등으로 인하여 개혁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으며 근대국가를 완성하지 못하였다. 결국 열강들에게 이권을 내어주고 국제 정세 속에서 숨을 죽이며 살아가게 되었다. 이렇게 흘러가던 중 1904년, 러-일 전쟁이 발발하였다.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일본은 러시아를 굴복시켰고 포츠머스에서 강화 조약을 맺게 되었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대한제국 내에 가지고 있던 이권들을 모두 포기하게 되었다. 일본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미국과 영국을 만나 가쓰라-태프트 밀약, 제2차 영일동맹을 각각 체결하였다. 주변의 경쟁자들과 주변의 열강들의 암묵적인 동의를 받아낸 일본은 본격적으로 대한제국을 압박하게 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