羅末麗初의 豪族과 鄕吏
- 최초 등록일
- 2015.04.17
- 최종 저작일
- 20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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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豪族의 登場
1) 海上勢力家의 성장
2) 군진세력의 대두
3) 성주, 장군의 자립
3. 鄕吏의 成立
1) 鄕吏制度의 成立
4. 결론
5. 참고문헌
본문내용
新羅 下代의 혼란은 地方勢力家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하여 새로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在地地配勢力을 우리는 흔히들 豪族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豪族은 城主 혹은 將軍을 칭하는 부류와 海上勢力家, 그리고 軍鎭勢力으로 나눌 수가 있다. 이들 豪族 세력의 대해서 海上勢力家의 성장과 軍陣勢力의 대두, 城主․將軍의 自立에 대하여 알아본다.
<중 략>
신라는 지방에서 代를 이어가며 지배적 지위를 누리는 유력자들이 있었다. 그 대부분은 郡縣의 행정체계 밑에서 村落民을 통제하는 구실을 담당해 온 村主層이었다. 이들은 관료는 아니었지만 鄕村에서 상당한 권세를 부릴 수 있는 토호세력이었다. 이러한 村主들은 많은 土地의 소유를 기반으로 하여 경제적인 면에서도 뚜렷한 존재로 성장해 신라 下待에 자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방의 유력자들 중에는 몰락해 내려간 中央貴族 출신이 또한 한 부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中央貴族 가운데는 眞骨도 있었지만 6頭品 출신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일족을 거느리고 지방으로 내려가 새로이 지반을 닦고, 그곳의 세력가로 성장하였다.
<중 략>
고려 초의 향호는 두 길을 걸었다. 즉, 일찍부터 중앙관료화되어 귀족이 된 사람과 그대로 지방에 남아 향리로 전화한 부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시기에는 중앙귀족화한 사람과 재지향리와의 신분적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태조 대 이후 혜종․정종․광종․경종․성종대의 지배세력은 각 시기의 정치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었지만, 그 출신지역 및 세력지역이 지방이라는 점에서는 일치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성종2년의 이직개혁을 시점으로 하여 중앙기구에 지방 세력은 편입되어 가는데, 이러한 사실의 집약으로서 향리의 제도적 성립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향리제의 성립은 태조 시기에 실시된 外官의 파견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것이다.
참고 자료
朴敬子,『고려시대 향리연구』, 국학자료원, 2001
朴龍雲,『高麗時代史(上)』, 一志社, 1985
朴敬子, 高麗 鄕吏制度의 成立, 역사학회, 역사학보 63권, 1974
박은경, 고려시대 지방귀족의 위상, 진단학회, 진단학보 제100집,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