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를 주장한 인물
- 최초 등록일
- 2015.03.23
- 최종 저작일
- 20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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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김윤식은 유신환·박규수의 문인으로 정부의 개항 정책에 따라 영선사를 인솔하였다. 연미사를 위하여 이홍장과 7차에 걸친 회담을 하였고, 그 결과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되었다. 또 청 체류 중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청에 파병을 요청하는 동시에 대원군을 제거할 수 있는 방략 등을 제의하여 청의 개입을 주도하였다. 이후 갑신정변 때에도 위안 스카이에게 구원을 요청하여 정변을 끝냈다.
김홍집 내각에 등용되어 갑오개혁에 간여하였으나, 아관 파천으로 외무대신에서 면직되었고, 을미사변과 관련해 탄핵을 받아 유배되었다. 이후 일진회의 간청과 정부의 70세 이상자에 대한 석방 조처에 따라 10년 만에 해금되어 서울에 돌아왔다.
서울에 돌아온 뒤 갑신정변과 을미사변에 관련된 인사들을 중심으로 강구회를 조직하여 회장이 되었고, 한말 애국 계몽 운동이 활발해지자 기호학회 회장, 흥사단 단장, 교육 구락부 부장, 대동교 총회 총장으로 활약하였다. 3·1 운동이 일어나자 이용직과 더불어 독립을 요구하는 ‘대일본장서’를 제출하여 저항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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