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종의 개혁정치
- 최초 등록일
- 2015.01.15
- 최종 저작일
- 2014.06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Ⅰ. 머리말
Ⅱ. 본론
1. 광종 이전의 정치상황
2. 광종의 개혁정치
3. 광종 개혁정치의 의의와 시사점
Ⅲ. 맺음말
본문내용
고려의 창업자 태조 왕건이 세상을 뜬 후 전개된 왕위계승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자는 왕소였다. 왕소는 스물한 살 때 친형 왕요(정종)와 협력하여 배다른 형인 제2대 왕 왕무(혜종)를 몰락시키고 이어 스물다섯 살 때는 949년 친형인 제3대 정종마저 물리치고 자신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 그가 바로 제4대 왕 광종이다.
광종 왕소도 박수경의 평주 세력, 대목황후의 황주 세력 등 여러 호족과 장군의 도움을 받아 즉위하였기 때문에, 초기에는 그들과 화합을 유지하며 통치기반을 닦는 데 주력하였다. 광종은 공식적으로 황제를 칭하고 독자적인 연호를 반포하여 통치자의 존엄성과 태조의 정통 후계자임을 과시하며 고려의 위상을 고양시켰다.
<중 략>
광종은 즉위 초기에 호족들과 공신들의 비위를 맞추어주며 온건한 정책을 펼친다. 대표적으로 개국 공신들을 네 등급으로 나누어 그에 맞게 포상한 일이다. 이것은 광종 자신도 호족 세력들을 기반으로 왕이 되었고, 강력한 공신·호족 세력들에 의해 언제 숙청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우선적으로 그들에게 친화적인 모습을 보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광종은 조심스럽게 그의 개혁정치를 실시한다. 광종은 즉위한 다음해에 연호를 선포하고 대내외적으로 자신이 황제임을 칭하였다. 광종은 자신의 치세가 시작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광덕’이라는 연호를 선포하였고, 이는 두 형을 몰아내어 왕이 된 그에게 정통성을 확립해주는 도구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개경을 황도라 하고 서경을 서도라 하여 황제가 머무는 곳을 개경이라 확실히 못 박아두었다.
<중 략>
광종 개혁의 의의는, 과감한 제반 개혁정책을 통해서 새 왕조의 국왕으로서의 자신감과 위엄을 과시하고 새로운 국가체제와 정치질서를 이루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이다. 광종이 없었더라면 500년 역사의 고려가 없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그에 의해 고려가 안정되었다. 나라의 체제를 정비하기 위해서는 누군 가 악역을 많아서 보수적이고, 자기 특권만 가지고 나라를 좌지우지 하려는 세력을 청산해야 했는데 그게 광종이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김창현『5백년의 리더십-광종의 제국』, 푸른역사
김창현『광종, 삼한 융화를 이루어낸 고려의 황제』, 내일을 여는 역사
김종성『인물한국사 이야기-고려의 성립과 영토확장』, 문예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