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케플러(Johannes Kepler)
- 최초 등록일
- 2014.11.06
- 최종 저작일
- 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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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케플러의 생애
2. 케플러의 업적
3. 케플러에 대한 나의 생각
본문내용
케플러는 1571년 12월 27일에 로마 제국의 자유도시였던 독일 슈투트카르트 근처의 바일 데어 슈타트에서 태어났다. 칠삭둥이 중에서 막내로 태어났고 집안의 사정 또한 넉넉하지 못했다. 또 어린 시절 천연두를 심하게 앓아 시력이 굉장히 나빠져 나중에 직접 별이나 행성을 관찰할 수 없게 된다. 아버지 하인리히는 군인 용병일로 돈벌이를 했는데 케플러가 다섯 살 때 전쟁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전선에 나가 싸우다 죽은 걸로 추정된다. 또한 어머니 카탈리나 굴덴만은 여관집의 딸로 태어나 치료사와 약재상으로도 일을 했는데 이것으로 인해 나중에 당시 유럽 전역에 유행하던 마녀사냥의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중 략>
어쩔 수 없이 케플러는 23살의 나이에 교수자리를 받아들이고 학생들에게 강의를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케플러는 좋은 교육자가 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케플러가 워낙 목소리도 작고 수업을 워낙 지루하고 재미없게 했기 때문에 두 번째 학기 수업 때는 수업을 신청한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학자로써는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교수가 되고 계속해서 연구를 하며 수많은 업적을 남기게 된다. 케플러는 그라츠 대학에서 종교적인 이유로 퇴출을 당하고 린츠 지방으로 이동하게 된다.
<중 략>
내가 케플러에 대해 조사하면서 느낀 것은 그가 어떻게 남들보다 어려운 유년시절 속에서 학문에 대한 큰 뜻을 가지고 여러 가지 업적을 남길 수 있었는가 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도 잃고 시력까지 잃어 천문학을 연구하기는 더더욱 어려웠을 것이고 당시 종교가 지배하던 사회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천문체계를 옹호하며 연구를 진행하기는 더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케플러 시대의 천문학의 목적이 천문현상을 관찰하고 그 현상을 구하는데 있었다면 케플러는 그것을 실현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