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선조들의 성문화, 선사시대 성 신앙적 형상, 삼국 시대의 주술적 성애 표현, 고려 시대의 성 풍습, 조선시대의 성 풍습
- 최초 등록일
- 2014.10.08
- 최종 저작일
- 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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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선사시대 성 신앙적 형상
(1) 마을 신앙
(2) 기자 신앙
3. 삼국 시대의 주술적 성애 표현
(1) 고구려
(2) 백제
(3) 신라
4. 고려 시대의 성 풍습
5. 조선시대의 성 풍습
(1) 남녀칠세부동석의 시대
(2) 유교 사회에서도 발랄했던 남녀의 애정사
(3)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4) 조선시대 결혼 풍습
(5) 조선시대 성범죄에 대한 형벌제도
(6) 춘화로 본 조선시대 성 풍속
(7) 신랑 없는 결혼식을 한 궁녀들의 일생
참고문헌
본문내용
성이라는 말에 대해 우리 민족은 일종의 거부반응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일상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상스럽거나 무식한 사람으로 몰아 세우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직장 여성동료에게 음담패설을 말하는 사람을 성폭력행위자라고 하는 법률이 만들어질 정도이다.
이러한 사정은 성을 떠올리는 대화공간을 같은 성끼리, 즉 남성들이 모여 있거나 여성들만이 모여있는 자리에서만 가능하다는 인식을 만들었다. 이런 전통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강화된 것으로 보이는데, 고려시대만 해도 성에 대해서 무척이나 개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 략>
근친혼은 신라의 풍속을 이어 받은 것으로서 성풍속이 개방적이었다. 여자가 자신의 남편의 아이가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는 경우가 많았고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이복남매와 숙부와 조카 간의 근친혼도 행해졌습니다.
점차 근친혼이 금지된 시기는 유교의 정치사회적인 영향력이 증대되던 고려중기 때고 근친간의 혼인 전면적으로 금지된 시기는 고려왕조가 망하고 역성혁명으로 조선왕조가 창업된 후 일겁이다.
고려 후기에는 원나라의 성애술을 담은 그림이나 서적이 유입되었을 가능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특히 고려의 왕세자는 원나라에 볼모로 일정기간 체류하였고, 원왕실의 공주를 대비로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 조건 속에서 원나라 궁중의 문란하고 방만한 성풍습을 익혀왔을 가능성이 높다.
<중 략>
조선시대에는 왜 그렇게 남녀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 했을까? 조선의 통치이념이었던 유교에서는 이것을 '부부유별'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우주 만물에 하늘과 땅이 있듯이 인간에게도 남자와 여자가 있는데, 이것은 음양의 법칙에 의한 것이라 한다. 따라서 부부는 상호 보완적이되 각자의 일이 완전히 분리되어야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남녀유별은 평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으로서,남자는 우주만물을 형성하는 근원이며 여자는 그에 종속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불평등한 남녀관계는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자라는 동안 내낸 교육을 통해 주입되었다.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상위에 눕히고 옥을 주어 놀게 하며 여자아이는 바닥에 눕히고 기와를 가지고 놀게 하였다. 이는 꼭 여자를 천대해서가 아니라 분수에 맞게 하기 위해서였다.
참고 자료
<서명>, 저자, 발행처, 발행년도 순.
<민중들이 바라본 性文學>, 이종철∙김종대 공저, 민속원, 1999
<한국의 민속과 性>, 비교민속학회, 지식산업사, 1997
<조선의 성풍속>, 정성희, 가람 기획, 1998
<(미술로 본) 한국의 에로티시즘>, 이태호, 여성신문사, 1998
<한국의 성신앙>, 김종대, 인디북,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