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초기 자유당 독재의 선구자 이기붕
- 최초 등록일
- 2014.09.25
- 최종 저작일
- 2013.08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목차
1. 머리말
2. 이기붕의 기본 정보
3. 사사오입 개헌
4. 당시의 시대 풍조와 관제 데모
5. 이정재와 국회의원 공천권 탈취
6. 이기붕의 최후
7. 맺음말
본문내용
최근 제대로 보지 못했다가 다시 보게 된 드라마 <야인시대>를 보고 나서 많은 것을 느꼈다. 특히 실권을 쥐고 권력을 휘두르는 자유당과 그에 맞서는 야당의 이야기가 가장 가슴에 와 닿은 내용이었다. 필자는 필자가 조사한 자유당과 이기붕에 대한 내용과 드라마 <야인시대>의 내용을 참조하여 이야기 형식으로 글을 쓰며, 맺음말에 필자의 생각을 서술하였다.
<중 략>
1951년 이승만의 지시로 이범석과 함께 자유당을 창당, 2년 후 이범석의 족청계 세력을 축출하고 중앙위원회 의장에 취임, 실권을 장악하였다. 1954년 5월 제3대 민의원에 당선되어 민의원 의장이 되고, 이승만의 종신집권을 위하여 초대 대통령의 중임제한 철폐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발의, 일단 부결된 것을 사사오입으로 번복, 가결을 강행하였다.
1956년 자유당 공천으로 부통령에 입후보하였으나 낙선하고, 1960년 3월 15일 대통령선거 때 공개·부정선거로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중 략>
당시 대한민국은 초기 민주공화국 단계였고 민주주의가 상당히 미숙한 상태였다. 해방 이후 미군정 출범 당시 민주주의 이념에 따라 행동했던 대한민국 임시 정부계 인사들은 일체 배제되고, 친일파 출신이었던 관료들이 그대로 등용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들은 미군정이 물러가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대한민국의 공무원으로 된 것이다(대표적인 인물로 노덕술이 있다). 또한 대한민국 바로 이전에는 왕조 시대였을 뿐더러 이승만은 자유당 인사와 측근들에게 ‘국부’라는 등의 호칭으로 불리며 임금 취급을 받았다. 또한 사사오입 같은 일사부재의나, 발췌 개헌 같이 군대를 끌어들여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민주주의 국가로서 결코 쉽게 보지 못할 상황들이 빈번하였다.
참고 자료
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