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복의 역사] 조선시대 여자복식 - 왕실복식, 서민 예복, 서민 일상복
- 최초 등록일
- 2014.06.22
- 최종 저작일
- 20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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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왕실복식
1) 대삼(大杉)
2) 치적의(치翟依)
3) 적의(翟依)
4) 원삼
5) 당의(唐衣)
2. 서민 예복
1) 단삼(團)
2) 활옷
3) 원삼
4) 저고리
3. 서민 일상복
1) 쓰개치마, 장옷
2) 기생복( 조선후기 기생의 외출복)
3) 고쟁이
4) 개짐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왕실복식
1) 대삼(大杉)
조선시대 왕비 예복 중 가장 으뜸 되는 옷을 적의(翟衣)라고 한다. 조선 초기, 이 옷은 중국 명(明)나라에서 보내 왔다. 머리에 쓰는 관은 칠적관, 옷은 배자와 하피가 달려 있는 대삼(大杉)이며 상아 홀(笏)을 들었다. 이러한 대삼 제도는 인조대까지 시행되었다.
2) 치적의(치翟依)
조선 중기로 들어오면서 우리나라는 임진 ∙ 병자 양란 이후 명 복식의 영향기에서 벗어나 우리의 민족복식 형성기로 접어 들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임진 ․ 병자 양란을 고비로 왕비의 예복은 대삼과는 달리 『대회명전』등에 의거하여 새로 적의제(翟依制)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리하여 색은 대삼과 같은 대홍색으로 하였고 적문도 왕의 장문(章紋) 수에 대응하도록 구성하였다.
3) 적의(翟依)
국말 고종이 황제가 되고 왕비가 황후로 불리면서 명 황후의 적의제를 그래도 우리나라 황후의 것으로 제정하였고 명 황태자비 적의제를 우리나라 황태자비의 것으로 하였다. 서로 비슷하나 무늬의 등(等) 수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황후의 것은 12등의 적문 사이사이에 작은 이화 꽃을 넣었으나 이는 중국에서는 윤화를 넣었던 데 반하여 이왕가의 상징 문양은 이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황태자빈은 9등으로 하며 이는 면복의 장문과 동일한 것이다. 황후 적의의 바탕색은 심청색이었고 깃과 도련, 수구에 홍선색을 두르고 황후는 운룡문(雲龍紋)을 직금하였고 황태자빈의 것은 심청색 바탕에 홍선 색을 수구와 도련, 깃에 둘렀는데 여기에 운봉문(雲鳳紋)을 직금하였다.
참고 자료
조효순 저, 우리옷 이천년, 미술문화 2001
전호태 저, 고구려 고분벽화의 세계,서울대학교 출판부 2004
김은정, 임린 저, 역사 속의 우리옷 변천사, 전남대학교출판부 2009
김정호 저, 우리 옷 역사 2000년, 글누리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