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화의 이해
- 최초 등록일
- 2003.06.08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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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일제의 대한제국 황실말살
1. 천황의 5세손으로 대접받은 고종·순종
2. 왕실 규모, 병탄 이후 5분의 1로 줄여.
3. 일제 강압에 집요하게 저항한 왕족
4. 고종 괴롭혀 간접살인...영친왕 정책결혼 추진
4. 일제의 ‘왕실 왜곡’ 바로잡아야.
Ⅱ. 대한제국황실의 발자취
1. 고종이 꿈꾸었던 자주독립국가 건설의 첫 발자취 - 대한제국
2.고종의 즉위와 당시의 시대적 과제
3. 침략 일본의 황후살해 만행 - 을미사변
4. 대한제국 성립에 이르기까지
5. 대한제국 ‘헌법’의 선포
6. 자주적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광무개혁
Ⅲ 대한제국과 일본사이에 맺었던 조약
본문내용
Ⅰ. 일제의 대한제국 황실말살
일제의 식민 통치 실상과 그들이 왜곡한 역사는 광복 50년을 경과하면서 상당 부분 밝혀지고 바로잡혔다. 그러나 개국 이래 5백여년간 지탱한 조선의 군주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 소멸했는지는 지금까지 소상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연구원 산하 장서각에 소장된 대한제국 왕실 족보 등 관련 자료를 면밀히 분석해 조선 왕실이 해체된 전모를 밝힌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일제하 이왕직 이왕-직(李王職)[이ː--]
일제 강점기에, 궁내부에 속하여 조선 왕실의 일을 맡아보던 관청.
과 이왕가 족보〉등 연구결과에 따르면, 일제는 그동안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조선 왕실을 흡수·해체했다.
을사조약(1905년)과 한·일협약(일명 정미조약·1907년)을 맺어 조선왕실로부터 대한제국의 외교권과 내정권을 빼앗은 일제는 마침내 1910년 국권을 완전히 강탈하는 한·일병탄을 강행했다. 1910년8월22일, 매국노 이완용과 당시 조선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서명·날인한 이 조약은 놀랍게도 정식 명칭이 없었으며(일본은 훗날 일·한 병합조약 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조약 체결에 따르는 비준 절차가 생략되었고, 비준서를 대신할 순종 황제의 조서마저 일본이 날조한 불법적인 것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