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紳士)지배체제-명청시대, 신사층의 형성과 사회 지배
- 최초 등록일
- 2014.04.08
- 최종 저작일
- 20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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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사지배체제에 대한 내용의 리포트입니다.
신사와 신사지배체제, 그리고 조선의 양반과의 비교를 통해 정리 하였습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신사란 무엇인가?
2. 신사의 성립 과정
3. 신사의 사회·경제적인 역할, 그리고 신사지배체제
4. 명청시대의 사대부, 그리고 조선의 양반
Ⅲ. 결론
본문내용
서론
송원 시대의 지배층은 사대부(士大夫), 명청대의 사회의 지배층은 신사(紳士)로 명명되고 있다. 송원 시대의 사대부는 유교적 지식인으로서 관료(관직경력자 포함)이고 대체로 지주였다고 할 수 있다. 명청시대의 신사는 스스로 ‘사대부’로 자처(自處)할 만큼 이념적·사상적으로 송 대 사대부의 모든 것을 계승한 존재였다. 결국, 이런 사대부를 지배층으로 하는 사회구조는 송대에 확립되어 본질적으로는 청 말까지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이번 글에서는 송대의 사대부를 계승한 명청시대 지배층, ‘신사’에 대해 알아보고 ‘신사지배체제’에 대해 정리해보고자 한다.
<중 략>
인정(仁情)이 사인을 중히 여김이 이와 같다. 어찌 그 위력을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독서하고 예절을 아는 사람들이고, 우리들은 비속한 평민으로 그들의 비웃음 만을 받을 뿐이다.” 여곤(呂坤)의 경험담. 오금성, 앞 책, 351~352쪽.
7) 오금성, 앞 책, 350~353쪽.
8) ① 사인층이 비록 ‘보신가(保身家)’적인 행동을 하는 예도 많았으나, 그들도 사대부로서의 자의식과 천하에 대한 사명의식을 가졌다는 의미에서는 관직경력자와 유사했다.
② 사인은 고전 지식과 언어능력의 소유자였고, 언어적·문화적인 면에서는 신과 사가 유사했다.
③ 중국 전래의 좌주문생(座主門生) 관계. 즉 과거시험의 고시관과 합격자, 학교의 교사와 학생 사이에는 끈끈한 사제관계가 맺어져 대를 이어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다. 만일 이런 관계를 지키지 않으면 ‘훼륜(毁倫)’으로 고소당하기도 했다.
④ 명 중기 이후 성행한 서원의 강화, 혹은 시사·문사·동년(詩社·文社·同年) 모임 등에 참여하는 신과 사는, 현실적인 신분과 빈부의 차이를 초월하여 서로 ‘동지(同志)’라 부르며 깊은 붕우적(朋友的) 정의(情誼)를 나누었다.
참고 자료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양반의 일생, 글항아리, 2009.
신성곤,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서해문집, 2004.
신채식, 동양사개론, 삼영사, 2009.
오금성, 명청시대 사회경제사, 이산,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