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
- 최초 등록일
- 2003.05.18
- 최종 저작일
- 2003.05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5,000원
목차
1. 원인
1) 근본 원인- 앙샹레짐의 모순
2) 직접적 원인
2. 국민의회와 91년헌법
3. 입법의회와 혁명전쟁
4. 국민공회와 국왕의 처형
5. 공포정치
6. 테르미도로(熱의 달)의 반동과 혁명의 보수화
7. 총재 정부
프랑스혁명기의 주요 인물들
조르쥬 당똥(Georges Jacques Danton: 1759-1794)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삐에르(Maximilien de Robespierre)
루이 드 생쥐스뜨(Louis de Saint-Just)
까미유 데물랭(Camille Desmoulins)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본문내용
1. 원인
1) 근본 원인- 앙샹레짐의 모순
혁명전의 프랑스는 신분제 존속, 2700만명의 인구 중 성직자 10만명, 귀족이 40만이 1,2신분 차지, 교회는 전 국토의 10% 정도 소유, 귀족은 20% 소유. 나머지는 제3신분. 성직자와 귀족은 특권 계급으로서 면세를 비롯한 각종 특권을 누림. 특히, 고위 귀족 집단은 폐쇄적인 카스트 집단이었으며 소귀족과 부유한 부르주아지에 대해 사회적 상승을 일체 금지. 사회 피라미드의 밑바닥에는 국민의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평민, 즉 제 3신분이 있었다. 제3신분을 다양한 사회 계층을 망라했으나 부르주아지라고 불린 시민계층이 가장 중요. 이들은 중세말 이후 성장을 거듭하였으나 정치권력에서 소외되었고, 길드와 같은 봉건적 잔재로 자유로운 경제활동의 제약을 받는다고 인식. 새로운 사회를 지향-이데올로기로서 계몽사상을 받아들임. 농민은 제 3 신분 중에서도 대다수 차지(전 국토의 약 1/3이상의 토지 보유), 이들은 인신적으로는 해방되었으나 여전히 봉건적 공납을 지불하고 각종 부역에 시달림. 영국의 농민들과는 달리 하나의 독자적 사회 세력을 형성-봉건제의 잔재와 농민층의 건재는 프랑스 혁명에 독특한 사회적 성격 부여.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