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이후 독일과 일본의 전후처리, 미군의 이라크 전쟁범죄
- 최초 등록일
- 2013.11.15
- 최종 저작일
- 20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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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뉘른베르크 裁判
(1) 재판의 진행 과정
(2) 재판의 결과 및 현황
2. 東京裁判
(1) 재판의 준비 과정
(2) 기소와 소추(그 안에서 면책되어진 것들)
(3) 심리의 종결과 A급 전범 용의자의 석방
본문내용
(1) 재판의 진행 과정
제 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종결됨과 동시에 독일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 4개국의 분할 점령 하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점령상황은 전쟁범죄를 처단하는 뉘른베르크와 도쿄에서 열린 국제군사재판과정에 다른 영향을 주게 된다. 뉘른베르크 전쟁재판은 나치스가 저지른 전쟁범죄와 함께 `人道에 대한 범죄`가 추가되어 동?서독 정부가 수립된 뒤에도 나치스의 범죄에 가담한 자들에 대한 소추가 계속되었다. 이 과제와 관련해 독일 언론계에서 거론되는 `제2의 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히틀러 시대 독일인이 범한 죄를 `제1의 죄‘라고 할 수 있고 `제2의 죄’는 1945년 이후 `제1의 죄‘를 심리적으로 억압하고 부정한 것을 말한다.
한편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편성과정은 파괴된 유럽경제의 잠재력을 복구하기 위한 마셜 플랜의 적용으로 독일경제를 복구시켜 유럽경제통합을 지향토록 하였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독일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면서 과거청산과 배상을 충실히 이행하였으며 서방과의 결속을 다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1.1.1.1.1.1.1. 이러한 경제 성장 과정을 보면 서독은 전후 경제를 부흥시키는 과정에서 과거 나치로부터 심대한 피해를 입은 유럽 여러 나라와 교역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재판의 과정이 우선 가까운 나라들부터라도 사죄와 보상을 하면서 관계를 열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의식 하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일본은 전승국 미국의 경제에 종속적으로 결합하는 길을 걸었기 때문에 재판의 과정 또한 피해를 끼친 아시아 여러 나라들과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측면이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이 양국에 작용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