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추사 김정희와 적거지
- 최초 등록일
- 2003.04.22
- 최종 저작일
- 2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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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추사의 생애
2> 추사의 계보
3> 추사체의 필법
4>)추사 적거지와 전시장내 작품
1추사적거지에 대하여
2전시장내 작품해석
5> 추사적거지 초가집 4동에 대한 설명
본문내용
추사 김정희 선생님은 정조 10년(1786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높은 벼슬에 오른 선비가 많았으며, 성품이 강직하여 화가 자기에게 미칠 경우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던 인물이 많았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 김정희는 6세 때에 立春帖(입춘첩)을 썼는데, 당시 42세 이던 박제가 그것을 보고 크게 경탄해 "吾將敎而成之(오장교이성지)" 즉, "내가 장차 가르쳐 성가 시키겠다" 라고 하였다. 7세 때 또, 입춘첩을 써서 대문에 붙였는데 좌의정 채제공이 문 앞을 지나다가 그 입춘첩을 보고 일부러 집에 들러서 그의 아버지 김노경에게 "이 아이는 명필로 이름을 떨치겠으나, 글씨를 잘 쓰면 명이 기구하겠으니 글씨를 그만 둘 것이며 만일 문장으로 세상을 울리면 반드시 화를 입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일화들은「大東奇聞卷4(대동기문권4)」에 전하고 있다. 김정희는 15세가 되던 정조 24년(1800년) 「北學議(북학의)」로 청대의 물질 문화를 배워 산수 실학을 주장한 박제가에게 師事(사사)받았으며,박제가는 중국을 세 번이나 내왕, 청대의 석학들과 사귀면서 직, 간접으로 많은 영향을 주어 학문의 기틀을 다져 주었다.생원시에 급제했던 24세에 그의 생부(호조 참판)가 연경으로 갈 때 함께 수행하여 당시 학계를 주름잡던 옹방강, 조강, 엽지선, 완원등을 만난 추사는특히 50세 위인 옹방강과 30세 위인 완원을 스승으로 삼고 각별한 지도를 받아 서법의 중심을 이루었으며, 이와 같은 석학들과의 만남은 그 후, 유배 생활 속에서 추사 서체의 독특함을 창출해내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