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운동단체, 통일전선운동(좌우합작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민족유일당운동, 원동민족혁명단체대표회, 대한민국임시정부 프랑스 조계(租界) 분석
- 최초 등록일
- 2013.09.02
- 최종 저작일
- 20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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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
Ⅲ.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반대세력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운동단체
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통일전선운동(좌우합작운동)
Ⅵ.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민족유일당운동
Ⅶ.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원동민족혁명단체대표회
Ⅷ.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프랑스 조계(租界)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두만․압록강 너머의 중국 동북지방인 요령․길림․흑룡강의 3성 일대를 통칭하는 만주는 일제에 의한 민족수난기에 펼쳐진 항일독립운동의 중요 무대로 역사적 의미가 큰 지역이다. 한민족의 고지인 이 지역은 고조선 이래 고구려와 발해의 구강이기도 한 곳이다. 고려 때에는 일시 척지정책이 실시되어 두만강 너머 선춘령에 ‘고려지경’이라 각자한 국경 표지석을 세우기도 하였다. 여말선초에 이르러서는 이태조의 용흥지로 주목받던 지역이 포함되기도 하였다. 그 후 여진족의 청대에 이르러서는 압록․두만강 이북지역 천여리에 인위적인 봉금지대를 설정함으로써 이 일대에 대한 한민족의 활동이 금단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1712년 백두산 정계비를 건립한 이래로 월경금법을 강화하여 한민족의 활동영역에서 만주를 완전히 배제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면서 압록․두만강 대안 서북간도지역에 대한 한인의 이주계획이 활발하게 추진되어 그곳을 한인의 ‘신천지’로 가꾸어 갔다. 한인이 이곳에 이주하기 시작한 시기는 1860년대로 설정할 수 있다. 한인의 이러한 이주개척은 조선의 대내외적인 시련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1905년 을사오조약 전후부터 1910년 국치를 전후한 시기에는 그동안 항일전에서 살아남은 의병과 국내외 민족운동자들이 서북간도를 비롯한 남북만주와 연해주 등지로 건너가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주력하면서 그곳을 한민족의 ‘부흥기지’로 설정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들이 서북간도 일대를 독립운동기지로 설정한 이유는 압록․두만강의 一衣帶水만 건너면 국내에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는 이미 수십만에 달하는 한인사회가 형성되어 인적, 물적 기반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만주지역에서 펼쳐진 한민족의 조국독립운동은 국내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인접한 러시아 연해주 한인사회의 민족운동과도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와 같이 전개된 서북간도를 비롯한 남북만주지역의 조국독립운동은 일제에 의한 민족수난기에 펼쳐진 국외 독립운동의 근간이 되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성립 후부터는 임시정부 성장 발전의 주요기반이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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