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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등록일
- 2013.07.24
- 최종 저작일
- 20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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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개념
Ⅲ.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선전위원회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좌익세력합류
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특무공작
Ⅵ.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민개병제
Ⅶ.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제2차독립시위운동
Ⅷ.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이승만 대통령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1919년 3.1운동 직후 임시정부는 상해․한성․노령 등 여러 곳에서 수립되었는데, 결국 임시정부는 한성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면서, 상해와 노령의 정부를 개조하는 방식으로 통합되었다. 이 통합 임시정부에는 무장투쟁 노선을 견지하였던 노령의 이동휘 세력이 가담하였고, 서․북간도의 무장 독립군도 참여하였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표성이 강화되었고, 군사적 기반도 일정하게 확보하게 되었다. 게다가 상해 임시정부가 기대했던 파리강화회의에는 한국 문제가 상정조차 되지 못하는 결과가 발생하였다. 이를 계기로 국제사회에 대한 외교는 한계가 있다는 인식과 국제사회의 평화주의적 도덕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었다. 이에 따라 통합임시정부의 출범과 함께 독립운동 방략 상의 변화가 나타났다.
<중 략>
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특무공작
1930년대와 1940년대 초반은 중국 지역 한국인 독립운동자들에게 독립전쟁 수행을 위한 유리한 조건이 형성된 시기였다. 이 시기는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상해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 등 그동안 고대했던 對日本 戰爭이 연속적으로 발생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독립전쟁 준비 기간으로 설정했던 10년의 세월이 흐른 시점이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견지에서 1920년대가 독립전쟁 준비기라고 한다면, 1930년대 이후의 시기는 독립전쟁 실천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1930년대 이후 임시정부는 독립전쟁 방략을 구상하는 기본적 관점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종전에는 대규모의 全面戰 개념을 상정하였다. 따라서 전면전을 개시할 수 있는 군사적 역량을 갖출 때까지 준비한다는 생각이었다.
<중 략>
Ⅶ.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제2차독립시위운동
제2차 독립시위운동은 천진불변단을 중심으로 계획되던 것이 도산과 접목되면서 전국적인 시위운동 계획으로 확대되었다. 천진불변단은 1919년 8월 15일 임원 개선으로 부단장이던 명제세가 단장에 취임하였고, 박환이 부단장 겸 의사부장, 독고감이 재무부장으로 선임되었다. 이를 계기로 이들은 국내외에서 제2차 독립시위운동 계획을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들의 계획은 상해 임정의 도산, 평양의 조만식과 연계되면서 확대되어 갔다. 그리하여 천진불변단 단원들은 도산에 의해 한반도를 동서․남북으로 관통하고 있는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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